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인 자유학기제와 관련해, 학부모와 학생들의 가장 큰 궁금증은 ‘한 학기 동안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일 것이다. 이는 자유학기제의 성공 여부를 가를 관건이기도 하다.
<한겨레>가 1월19일부터 2월8일까지 한국진로교육학회 소속 교수·교장 연구원 25명과 교원단체인 좋은교사운동 소속 교사 7명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자유학기의 교육과정에 적합한 교육 내용으로 직업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체험활동’을 꼽은 이들이 29명(복수 응답)으로 가장 많았다. ‘교과통합형 진로교육’(24명), 학생들이 그룹을 만들어 진로와 관련한 여러가지 프로젝트 활동을 하는 ‘동아리 활동’(23명), 원하는 직업의 멘토와 관계를 맺고 자신의 꿈과 관련해 꾸준히 이야기를 나누는 ‘멘토링활동’(20명), 봉사활동(12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이 가운데 교사들이 교실 수업을 이용해 할 수 있는 ‘교과통합형 진로교육’은 말 그대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도덕 등 기존 교과에 진로교육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2000년부터 이런 방식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홍후조 고려대 교수(교육과정)는 “현재 한국에서 진로교육은 너무 주변화돼 있다. 사실 다윈의 진화론,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피타고라스의 정리 등 교과서에 등장하는 내용과 위인들은 당대에 가장 창의적이었던 이론이자 사람들이다. 그런 내용을 ‘이거 시험에 나온다’, ‘이거 외우라’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이런 교육 탓에 아이들은 어떤 직업이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게 되고, 그렇다 보니 장래 희망으로 의사, 판·검사, 교사 등을 습관적으로 꼽는 ‘꿈의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는 게 홍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이런 부작용에서 벗어나려면, 교사들이 한 손으로는 지식을, 다른 한 손으로는 진로와 창의성·사회성을 가르치는 ‘양손잡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교과통합형 진로교육은 이미 몇 차례 실험이 이뤄졌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2010년 서울 영동중, 경기 안양 비산중 등 초·중·고교 6곳을 ‘진로교육연구학교’로 지정해 운영했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2년 동안 국어, 사회, 수학, 도덕, 기술·가정 등 5개 교과목에 진로교육을 통합해 가르치는 교육과정을 짠 뒤 이들 학교에 적용했다.
수학의 경우, 중학교 1학년은 함수의 대응 개념을 직업과 연계해, 희망 직업과 관련된 함수 문제를 만들어보게 했다. 중학교 2학년은 함수와 연관된 기사나 현상을 발표하게 해, 생각지 못한 직업과 현상에서도 함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사회의 경우, 중학교 1학년은 세계의 기후를 살펴보는 단원에서 가상으로 남반구 여행을 하게 한 뒤, 세계를 무대로 진로를 탐색해보도록 했다. 중학교 2학년은 르네상스 시대와 관련된 영화를 감상하고 당시 직업과 오늘날의 직업을 비교해봤다.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일반적인 수업을 받은 아이들보다 △수업시간을 기다리는 정도 △교과 흥미 유발 정도 △하고 싶은 일에 도움이 됐는지 여부 △진로계획에 유익했는지 여부 등을 묻는 질문에 ‘긍정적 응답률’이 훨씬 높았다. 연구학교 운영 뒤 보고서를 쓴 정윤경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진로 따로, 수업 따로가 아니라 교과서 속 지식과 생활 속 지식을 연계하고 공부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교과통합형 진로교육이다. 진로교육이 교과교육과정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정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들에 대한 충분한 연수와, 수업에 대한 인식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조붕환 공주교대 교수(교육상담)는 “교사들이 진로교육에 대해서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또 진로교육이 단순히 직업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을 키워주는 교육이라는 생각도 가져야 한다. 이런 생각의 전환이 자발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교과부가 교사 연수나 전체 교육과정의 큰 그림을 그릴 때 시간적 여유를 갖고 교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