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대입논술은 공동출제해야 질 관리 가능해

choib 2012. 10. 8. 13:22

대입논술은 공동출제해야 질 관리 가능해”

[한겨레신문] 2012년 10월 08일(월) 오전 09:57   가| 이메일| 프린트
 

 

[한겨레] 이범 - 이기정 대담 인터뷰


사회양극화·대학서열화가 교육 황폐화 원인
장벽 허물어도 학교교육은 여전히 질 낮아

이범과 이기정. 한때 이들은 유명한 학원 강사였다. 학원가에서, 또 인터넷 강의를 통해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지금은 둘 다 사교육 업계를 떠나 공교육에 발을 담그고 있다. 이범은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으로, 이기정은 서울 북공고 교사이자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파견교사로 근무중이다. 이런 그들이 최근 각자 책을 냈다. 이범씨는 <우리교육 100문 100답>을, 이기정씨는 <교육대통령을 위한 직언직설>이란 책을 통해 우리 교육의 심각성과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고, 나름의 대안도 제시했다.

9월21일, <함께하는 교육>이 이 둘을 만나 한국 교육의 현실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교육개혁을 위해 필요한 점이 뭔지 들어봤다. 평소 둘의 교육 방향이 비슷해서인지, 서로 주거니 받거니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복잡한 부분은 쉽게 풀어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들은 무엇보다 “교육의 문제를 사회 양극화, 대학 서열화 탓으로 돌리지만 말고 공교육 내에서 입시제도나 학교 운영체제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기정씨는 “현재 학교 자율화 정책은 90%가 교장의 자율화일 뿐 학생과 교사의 자율권은 없다. 교실붕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일교재, 동일수업, 동일시험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범씨는 “똑똑한 교사가 학교에 들어오면 바보가 된다. 교사와 학생의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그는 “현재 제멋대로인 대입논술을 대교협(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공동출제하고, 합리적으로 질 관리를 하라”고 제시했다.

-둘 다 교육정책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동안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교육을 바라보는 서로의 관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범(이하 범): 일단, 우리 둘은 문제의식이나 해결하고자 하는 방향이 상당히 비슷하다. 우리 교육이 황폐화된 이유를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만으로 환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쟁이 심각하다는 건 현실 문제이고 내신제도, 학교체제, 대입제도 등이 함께 개혁돼야 한다.

이기정(이하 이): 내 말로 풀어보자면, 사회 양극화와 대학 서열화라는 두 장벽이 극심해지면 과도한 경쟁을 부추겨서 학교교육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장벽을 치우면 학교교육이 저절로 차원이 높아지고 질도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경쟁을 치워도 학교는 여전히 질 낮은 교육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학교교육을 살리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범: 특히 이기정 선생은 학교에서 교사, 학생들과 부딪치면서 얻은 응축된 경험이 많다. 교육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하다 보니 신뢰도 있고, 호소력도 있다. 반면, 나는 다른 나라와 제도 비교를 많이 하는 편이다.

-현재 어떤 교육정책을 내놔도 사교육이 줄어들기는커녕 거기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둘 다 사교육과 공교육을 모두 접해봐서 느끼는 바가 있을 텐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범: 우리나라에는 입시 사교육, 내신 사교육, 예체능 사교육이 있다. 특히 내신 사교육이 많은 이유는 교사마다 선호 교재나 교수학습방법이 다른데 똑같이 가르치고 똑같은 문제를 만들게 하기 때문이다.

이: ‘교실붕괴’라는 말이 있듯이 학교 무능의 측면에서 보면 수업은 어수선하고 애들은 자다가 학원에 가서 공부한다. 학교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동일교재, 동일수업, 동일시험이 사라져야 한다. 교재를 단순히 해설하고 설명하는 수업은 1980년대 학력고사 패러다임과 비슷하다. 지금 수업이 논술이나 수능에 도움이 안 되다 보니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보통 공교육 정상화란 말로 치고 넘어가버리는데, 이건 단순히 공교육 정상화가 아니라 학교교육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는 걸 말해준다.

범: 서양은 교사 개인별 자율성이 있어서 수업과 평가가 밀착된다. 서양과의 학교시스템의 결정적 차이가 이거다. 결국엔 교권의 문제다. 교권은 내신 사교육과 밀접하다. 교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가르치고 평가해야 한다. 그런 권리가 없으니까 내신 사교육이 폭발하는 것이다.

-교사에게 자율성을 주고 수업도 창의적으로 하는 혁신학교가 요즘 대세다. 공교육 내에서 교육 개혁을 한다는 취지의 혁신학교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범: 현재 제도 아래서는 혁신교사나 혁신학습은 살아날 수 없다. 일반 학교에서 혁신교사 혼자 혁신적인 수업과 평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혁신학교 보편화는 논리적으로는 말이 되지만, 현실적으로 확산되려면 혁신학급이 일반 학교에서 살아남고 뿌리내릴 조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일단, 생존하는 게 문제다. 그걸 지원하고 확산시킨 다음에 보편화를 이야기할 수가 있다.

이: 실제 학교에서 그런 수업을 시도한 적이 있다. 교과서 단순 분석 수업이 아니라 교과서를 폭넓게 뛰어넘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험에는 그렇게 안 낼 게 뻔하잖아요’ 하면서 다른 교사가 정리해준 교과서를 빌려다 빼곡히 적더라. 불안에 떠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 수업을 끝까지 유지할 수 없었다.

“교사, 학생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 없애야”
중요한 건 교사와 학생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것
차기 대통령은 무조건 더하려고 하지 말고 빼라

한번은 기회가 돼서 <국어생활>이란 과목을 한 학년 전체 맡게 돼 1년 동안 열심히 연구하면서 축적해뒀다. 하지만 다음에 그걸 못 써먹었다. 또 그런 기회가 와도 올해 한 번 하고 써먹지도 못할걸 하고 자포자기 할 것이다. 한 교사가 좀더 발전되고 차원 높은 수업을 지속적으로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혁신학교로 모인 건데, 그런 교사들이 다수인 학교를 많이 만들 수 있겠나? 그건 어려운 일이다.

범: 아무리 역량 있고 똑똑한 사람을 임용해도 학교에 들어오면 결국 바보가 된다. 현재 시스템 아래에서 적응하다 보면 포기하게 된다.

이: 지금 학력고사가 폐지된 지 20년이 됐는데, 학교 전체 수업의 70~80%는 학력고사 패러다임이다. 20%가 수능 패러다임, 논술은 1~2% 정도밖에 안 된다. 지금 제도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고 체념하게 만든다.

범: 지금 우리의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이다. 일년에 몇천 건이 넘는 공문이 날아온다. 교사의 일상적인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핀란드가 부러운 건 일년에 학교에서 받는 공문이 10개가 안 된다는 점이다. 그곳은 기본적으로 교사의 모든 에너지를 수업과 학생을 돌보는 데 쓸 수 있게 돼 있다. 이건 단위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과학기술부, 시·도교육청, 교육지원청까지 위에서부터 끊임없이 내려오는 지시와 공문이 있기 때문이다.

-대입제도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수능, 논술, 입사사정관제 등 논란이 많은데, 대입의 가장 핵심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범: 일단 대입 자율화라는 전제 아래 고삐가 풀린 것이다. 논술형 평가가 나쁜 건 아니지만 대학들이 제멋대로 문제를 내다 보니 전문성도 떨어지고 어려워진다. 내가 출제 참여 교수들 만났는데 악의를 갖고 한 게 아니라,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는지를 몰랐다. 결국 자기한테 익숙한 걸 문제로 내는 거였다. 대학 수준의 교육과정이라고 했더니 푸는 애들이 있다고 하더라. 근데 그걸 풀려면 학원을 다녀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대교협에서 논술 공동출제를 하라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질 관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대학별로 나눠서 하면 질 관리가 안 된다. 프랑스 바칼로레아, 독일 아비투어 시험처럼 국가고시 형태나 공인 형태로든 합리적으로 관리되면 된다.

이: 지금은 내신, 수능, 논술, 스펙 쌓기 이게 다 이질적이다. 학교의 수업방식은 입시에서 못 벗어나면서도 입시를 무시하기도 한다. 학교가 입시에 제대로 몰입하고 있다면 수능, 논술에 맞게 수업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 학력고사식 수업을 하고 있다. 핵심은 학생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학교 자율성을 100% 보장한다는 것은 90%는 교장의 자율성이고 나머지 10%는 교사의 자율성을 말한다. 전문대 가는 아이들은 국·영·수 가운데 한과목만 있으면 되는데, 이 아이들 모두 수학, 영어 수업이 많아졌다. 입시제도에 필요도 없고 알아듣지도 못하니 엎드려 자게 된다. 소질과 적성이 무시되는 것이다.

범: 소질과 적성을 키워주도록 하려면 학교 자율성이 아니라 ‘학생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 학생 개인의 선택에 따라 과목 구성이나 진도를 달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학교 자율화 조처가 4번 나왔다. 내가 다 살펴봤는데, 그 수백 개의 항목 중에 ‘교사 개개인의 자율성’이나 ‘학생 개개인의 자율성’이라는 단어는 단 하나도 없다.

이: 가장 큰 문제가 ‘강제보충수업, 강제야간자율학습’이다. 이 정부 들어 학교 자율성을 준다고 규제가 없어졌다. 한마디로 학생의 자유를 억압할 자유를 교장한테 준 것이다. 그게 바로 학교 자율화 정책이었다.

범: 또 입학사정관제가 고삐를 더 풀어놓은 면도 있다. 이번에 서울대가 수시 비율을 80%로 늘리면서 전원에게 자기소개서를 내게 하고 첨부자료를 10개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원래 토플 점수도 못 냈지만, 학생부에 적히지 않은 것까지 허용해 이제 낼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 입시나 사교육 트렌드는 최상위권 영향을 받는데, 서울대가 이렇게 바꾼 이상 최상위권 아이들은 자소서를 써야 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바로 고1, 고2에게 전달된다. 또 외국어 점수나 지원학과와 관련된 자격증도 따야 한다. 사교육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로 사교육을 줄인다는 건 철저히 통제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대입 학생선발 방식을 공용화시켜야 한다. 대학교육과 고교교육을 합리적으로 연결해주는 것으로써 대학입시 선발법이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완전 제각기 따로 놀고 있다.

-정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금 대선 주자들도 나름 교육 공약을 내놓고 있다. 차기 대통령에게 교육 정책과 관련해 제안하거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범: 차기 대통령한테 원하는 거? 급한 불부터 좀 꺼라. 지금은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 정책이 필요하다. 교사, 학생들한테 불필요하게 규제하고 억압하는 것을 좀 없애라. 또 하나는 앞서 말한 대학별 논술고사, 입학사정관제 비교과 영역 등 대입에서 사교육을 유발시키는 정책을 없애라. 자꾸 뭘 더하라고 하지 말고 빼기를 잘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 불필요한 걸 빼고 넣어야 할 건 넣어야 하는데 현재 후보로 나온 세 명 다 공교육을 획기적으로 바꿀 정책이 제시가 안 돼 있다. 모든 후보가 구체적인 공약이 나온 상태가 아니라 일목요연하게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교육정책 측면에서는 교사 입장에서 불만이 많다. 교사 자율성을 키워주는 것과 학교의 제도와 구조를 완전히 교육 중심으로 바꾸는 거. 모든 후보가 이 두 가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가 안 돼 있다. 많은 걸 거둬내면서 플러스할 것이 있다면, 바로 공교육을 살리는 정책이다.


이범
<우리교육 100문 100답>은 실용서를 겸하고 있긴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실용서와는 다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제도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향후 교육 판도도 바뀐다. 따라서 수능이나 논술 준비에 대한 도움도 필요한데, 학부모들이 입시제도나 교육 트렌드에 대한 중장기적인 감각과 더불어 가치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다. 공교육, 사교육, 학습법 등 현재 우리 교육 현안을 총망라해 정리했다.

이기정
<교육대통령을 위한 직언직설>은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교육을 최고 화두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교육 현장에서 겪은 일과 교육 개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썼다. 그는 책에서 내신제도의 문제점을 짚고, 학교 운영체제가 교육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기정은 학원가에서 인기 강사로 이름을 날리다 교사가 됐다. 하지만 입시교육과 사무행정업무 중심으로 돌아가는 학교를 보며 학교 개혁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겨레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