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있는 문화공간을 찾아서
인문학이 있는 문화공간을 찾아서
지금 당신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수많은 관계 속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조용히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가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서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보겠다는 모험을 먼저 선택하기엔 섣부르다. 떠나본 사람은 안다, 일상이 있기에 일탈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별다른’삶을 찾는 방법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을 수도 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에서다. 편한 차림,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 가볍게 차를 마시거나 책을 보고 나올 수도 있고 그곳에서 마련한 특강을 수강할 수도 있다. 우리네 일상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곳, 한 단계 더 나은 삶의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공간들을 모아 소개한다.
● 이 시대의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다면
고전 읽는 ‘파이데이아 북카페’
대구시 동구 파계사삼거리를 지나 파계 1길로 접어들다 보면 우측 언덕배기에 시원하게 바깥 풍경을 담아내는 통유리 건물을 발견하게 된다. 팔공산의 전경이 한 눈에 조망되는 이곳은 파이데이아 북카페. 지난 2009년 2월 계명대학교 교육학과 교수직을 퇴임한 신득렬(파이데이아 아카데미아 원장) 씨가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모은 책과 사비를 들여 마련한 공간이다.
5천여 권의 장서가 구비되어있는 이곳은 5천원 커피값만 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북카페에는 호메로스의‘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아리스토텔레스의‘니코마코스 윤리학’등 대부분 인문학, 사회과학의 고전들이 꽂혀 있어 눈길을 끈다. 2층 파이데이아 아카데미아에서는 매주‘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올해로 20년 째 운영되어 온 이 프로그램은 저명한 교육철학자 허친스와 아들러가 1930년부터 대학생과 일반인의 교양교육을 위해 시행한‘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을 본뜬 것이다. ‘파이데이아’의 뜻은 그리스어로 ‘교육’ ‘교양’을 의미한다.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수백년 전, 수천년 전의 위대한 저서들을 읽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혼자서 읽기가 쉽지 않죠. 주변의 유혹도 많고. 함께 읽으면 끈기 있게 읽어나갈 수있습니다.” 신 원장은 현대인들에게 고전으로 읽혀지는 책들을 ‘위대한 저서’라 부른다. 고전은 단순히 ‘옛날 책’이란 의미도 있지만 그것은 시대를 초월해 언제나 살아있는, 영원한 가치가 있는 현대적인 책이란 의미에서‘위대한 저서’로 명명한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회원은 100여 명, 어린이, 청소년을 포함하면 140여 명에 이른다. 1년차 회원에서부터 9년차 회원들이 있다. 연차에 따라 읽어야 할 책들이 다르다. 연차가 적을수록 고전을 읽으며, 연차가 많을수록 20세기 책들과 가까워진다. 이 프로그램의 위대한 저서들을 완독하는데 총 12년이 걸린다. 회원들은 강의에 앞서 미리 50~70쪽 분량을 읽어 와야 한다. 90분 동안 진행되는 수업의 대부분은 회원들이 저마다 읽고 느낀 생각을 서로 이야기하는 토론식 수업이다.
“똑같은 내용을 읽지만 회원들의 생각은 저마다 다릅니다. 모두들 한마디씩 하려고 하다보니 수업 분위기는 매우 열띱니다. 회원들의 서로 다른 생각을 통해 편향되고 편파적인 독서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함께 독서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인문학에는 정답이 없어요. 함께 읽고 토론하다보면 여러 사람의 다양한 생각을 듣게 됩니다. 바로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힘이 생기죠.”
회원 가운데는 76세의 최고령 회원도 있고, 경북 영천시 임고면에서 매주 이곳을 찾는 사람도 있다. 주부, 간호사 등 직업도 다양하다. “매주 정해진 시간에 책읽기 습관을 들이기가쉽지 않다보니 1년차 회원들이 가장 탈락이 많은 편입니다. 2년차부터는 그간에 해 온 끈기가 있기 때문에 탈락 없이 잘 운영됩니다. 또 어려운 책들을 한 권 한 권씩 끝낼 때마다 회
원들이 느끼는 희열도 삶의 큰 활력소가 됩니다.”
매월 회비 5만원이면 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문의/ 982-7063
● 일상의 시간을 늦추다
인문학 이야기 마당 ‘카페 브리스토’
카페 브리스토(수성구 범물동)의 풍경은 여느 카페와 색다르다. 낮은 울타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쪽에는 꽃가게의 풍경이, 또 한쪽에는 서재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피아노, 어릴 적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풍금이 눈길을 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대학원과 독일에서 화훼 장식을 전공한 카페 주인 주헌옥(플로리스트) 씨가 자신의 전공과 관심분야를 고스란히 담아낸 공간이다. 지난 2008년 3월 문을 연 이곳에서는 꽃꽂이강좌, 독서토론 등이 열리고 있다.
주헌옥(사진 아래) 씨는“프랑스에는 ‘카페 더 플로러’라는 곳이 있어요. 1890년대에 생긴 카페인데, 사르트르, 카뮈 등 당대 예술인, 정치인들의 담론의 장소로 지금까지 문을 열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담론의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카페를 열었습니다.”라고 했다.
지난 2009년 4월부터는 인문학 이야기 마당이 매월 한 차례씩 열리고 있다. 이야기 모임의 이름은‘버스 종점이 있는 마을’ `. 수성구 범물1동 버스 종점 인근이라는 카페 브리스토의 위치가 그대로 모임의 이름이 되었다.
카페 일대와 수성구 주민들이 참여하는 인문학 이야기 모임은 지금까지 총 23회가 열렸다. 모임의 이장을 맡고 있는 김용락(경북외국어대학교 교수) 씨는“지역주민들이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또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불러 차원높은 이야기, 인문학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생각, 이야기들로 우리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해서요.”라고 모임의 출발 취지를 말했다.
매월 다양한 연령층,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지만 실질적으로 이 모임을 꾸려나가는 데는 김용락 교수를 비롯해 김세진(시조시인, 영신초등학교 교사), 주헌옥(플로리스트), 권오현(문학평론가), 김태용(시민사회신문 대구본부장), 정훈교(시인) 씨 등 6명의 역할이 크다. 매월 기획, 초대 강사 섭외, 홍보, 다과 준비까지, 각자 직업이 있는 상태에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지만 서로 뜻을 같이 한 만큼 이들이 모임에 쏟는 애정은 누구보다 크다.
인문학 이야기의 주된 주제는 주변의 일, 살아가는 이야기다. 다양한 사람, 다양한 삶이 있듯 매월 다뤄지는 인문학 내용도 다양하다. 경제, 교육, 미디어, 언론, 현대미술, 영화, 사랑 등이 그동안 주제로 다뤄졌다. 초대 강사도 시인, 경영기술연구소장, 교육평론가, 잡지 편집장, 문학치료사,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무역업체 사장, 가톨릭 신부, 성악가, 화가 등 다채롭다. 인문학 이야기 시간의 주제는 초대 강사가 직접 정한다. 어떠한 틀과 규칙도 없다보니 어떤 강사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인문학을 주제로 한 콘서트 분위기처럼 흥겹고 자유롭다. 회를 거듭할수록 일반인들의 참여율이 높다. 카페 주변을 산책하다 들르는 사람, 아내 손에 이끌려 온 남편, 자녀 등 카페에 모이는 사람들 반 이상이 일반인들이다. 이 가운데 5~6명 정도는 매월 인문학 이야기 시간을 빠뜨리지 않고 찾는다.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정훈교(사진 위)씨는 “유명인이 초대되면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는하지만 소박하게 시작한 만큼 사람들을 많이 모으기 위한 특별한 홍보는 하지 않습니다. 두세 번 정도의 문자만 보냅니다.”라고 했다. “고정팬이 증가하고 모임에 참여했던 사람이다음번에 친구, 혹은 자녀들을 하나둘씩 데려 오는 것으로 모임의 반응을 느낀다.”는 정 씨는“앞으로도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이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문의/ 782-4500
● 보고 듣고 읽을 수 있는 문화 공간
문화가 있는 헌책방 ‘물레책방’
수성구 범어동 수성경찰서 뒤편 주택가를 지나 있는 물레책방. 지하를 향해 계단을 한 칸 내려서면 묵은 책냄새가 훅 풍긴다.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시게 하는 아주 익숙한 냄새다. 기억 속 그‘냄새’의 근원은 사춘기 시절 밥 먹듯 드나들었던 만화방, 논문 자료를 찾기 위해 드나들었던 헌책방이다.
‘물레책방’은 단편영화 감독 장우석(34) 씨가 지난해 4월 문을 열었다. ‘책 냄새’가 난다고 해서 칙칙하고 먼지가 풀풀 풍기는 공간을 상상하면 안된다. 연둣빛으로 칠해진 입구 벽체가 환한 분위기를 만들고 실내 인테리어도 마치 북카페처럼 고즈넉하고 깔끔하다. 한쪽 벽면에는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작은 무대도 마련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도 준비되어 있다.
“원래 책을 읽고 모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헌책방을 즐겨 찾아다녔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헌책방들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뭔가 특색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물레책방’의 문을 열게 됐습니다.”
이곳은 장 씨 소유의 책 1만 권으로 시작되었는데 개점 1년 만에 장서가 2만권을 넘어섰다. 인문, 사학, 철학 등 인문학책들과 지역 문학 등 인문학이 주가 되지만 어린이 동화, 인문학 잡지 과월호 등도 구비되어 있다. 기존의 헌책방과의 차이점이라면 중고생들의 참고서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1년은 책방 운영과 프로그램 진행을 변홍철(한티재 대표, 전 녹색평론 편집주간), 조동현(대안학교 교사) 씨 등과 함께 했지만 1주년을 맞은 지난 4월부터는 장 씨 혼자 맡아 운영하고 있다.
개점 이후 이곳은 언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젊은이가 헌책방을 열었다는 것도 관심거리였지만 ‘문화가 있는 공간’을 표방한 다양한 행사가 열렸기 때문이다. ‘헌책 콘서트’,‘ 단편영화 상영회’,‘ 책 읽기’,‘ 평화영화제’, ‘청소년 인문학 강좌’,‘ 인문주간 행사’등이 이제는 물레책방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올 초부터 열린 ‘청소년 인문학 강좌’에는 15명 정도의 학생이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프로젝트 그룹 뒷BOOK과 함께 ‘공포특급’전이라는 기획전시도 열었다.
“요즘은 작은 공간에서 강연자와 직접 소통하는 것을 선호하는 분위기죠. 지난해부터 이곳에서 인문주간 행사를 열었어요. 평균 40여 명, 많을 때는 60명 이상이 이곳을 찾았습니다.”12월에는 영화음악 칼럼니스트 김관희 씨와 미술평론가 김영동 씨를 초청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인문학 특강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달 19일부터 26일까지는 뒷BOOK과 함께하는 두 번째 전시‘겨울을 주제로 한 “성탄특선”’전도 준비한다. “다양한 청년 문화를 다루는 잡지를 기획 중에 있고 대학생 창업 시스템과 연계하는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습니다.대구의 20, 30대 청년들과 함께 하는 기획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싶습니다.”매일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문을 연다.
문의/ 753-0423, http://blog.naver.com/mulaebook
● 일상을 이벤트로
커뮤니티 카페 ‘어색하지 않은 창고’
경북대학교 후문에 위치한‘어색하지 않은 창고’는 녹색소비자연대에서 4년간 활동가로 뛴 정미나 씨가 2009년 9월 이곳의 카페지기로 나서면서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행인문학, 연애인문학, 밥상공동체 모임 등 자유롭고 참신한 주제를 통해 행복한 생활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 카페는 특별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특별하고 거창한 주제를 화제로 잡지 않습니다. 우리가 대부분 별 생각 없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것들에 대한 의미를 짚어보고 좀더 책임 있는 행동을 하자는 데 취지가 있습니다.”
‘걷기에도 철학이 있다?’여행인문학은 바로 걷기에서 출발했다. 정미나 씨와 10명 미만의 참여자들은 ‘산티아고 순례길’등 여행 관련 책을 함께 읽고 여행 국가, 지역민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공정여행’에 대한 바른 여행길을 찾아 직접 여행길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지리산 둘레길을, 겨울에는 배 타고 제주 올레길을, 올 여름에는 배 타고 제주 강정마을을 다녀왔다. 최근에는 경북 예천군 용궁면으로 농촌활동을 떠나기도 했다. 좀더 창조적인 연애를 하자는 뜻에서 출발한 연애인문학은 고전소설, 심리학 관련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공부한다. 밥상공동체 모임은 현재에도 꾸준히 실천하는 이벤트로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서너 명의 대학생들과 함께 직접 점심밥을 지어 밥상을 차린다. 스스로 밥을 지어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밥상의 재료가 된 물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로컬 푸드(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운동), 유기농 농산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갖는 기회를 만든다.
“저희 카페 인문학 모임은 쉬운 인문학 모임을 추구합니다. 책 읽고 발제하는 식이 아니죠. 강사비, 회비도 없습니다. 함께 모인 참여자들이 공동으로 꾸려나갑니다.”
대학가 주변에 위치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웃 주민과 대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일상을 이벤트로, 돈 없이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천하고자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되는 이곳은 한편 어느 한 시인의 재능기부로 매주 일요일 청소년을 대상으로 독서토론모임도 열고 있다. 책, 음반, 기타, 바이올린 등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기증품들로 창고 곳곳을 채운 이곳은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기부금 형식의 입장료(1천원부터)를 받는다. 3~5월, 9월~12월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한다. 문의/ 011-9590-9672
● 커피와 인문학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곳
카페 '삼덕상회'
김주야_대구의 재발견 공동대표 권상구_중구 도시만들기지원센터 사무국장 최지애_카페지기
낮에는 다양한 철제 공구가게가 즐비한 곳, 밤이 되면 불고기와 우동을 파는 포장마차가 들어서는 곳, 북성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지난달 이곳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카페 ‘삼덕상회’가 오픈한 것. 작은 규모의 공간이라 언뜻 지나치면 눈에 확 띄지는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북성로’에 잘 녹아든 분위기다. 이곳에서는 커피와 피자, 샐러드 등을 즐길 수 있고 2층세미나실을 이용해 스터디를 할 수도 있다.
‘삼덕상회’의 입구는 작고 좁지만 건축 특성상 깊이가 깊은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이곳은 기존의 건물을 헐고 새로 짓지 않고 기존 건물의 골격을 그대로 둔 채 ‘리모델링’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단순한 리모델링을 넘어 북성로의 일제 강점기 건축물을 재활용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도 크다.
상호도 기존에 철물점이 사용하던‘삼덕상회’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사람과 도시의 역사를 이어받은 곳, ‘삼덕상회’는 그 자체가 ‘인문학적’인 공간인 셈이다.
‘삼덕상회’의 전체 코디네이터를 맡은 김주야(대구시문화재전문위원) 씨는 “삼덕상회는‘시대 건축물, 비어있는 공간, 문화적 재활용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맞는 곳이었다. 오랜 시간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과정에서 발견한 곳이었던 만큼 알뜰살뜰하게 작업을 했다.”라고 밝혔다.
북성로를 재발견하다
카페 삼덕상회의 전신은 철물점 삼덕상회이다. 최근 작고한 고 김성운 씨의 선친이 삼덕상회 자리에 철원상회라는 이름으로 북성로 공구 철물점의 태동기를 열었고 선친의 대를 이어 고 김성운 씨가 삼덕상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손으로 직접 꼬는 철사, 와이어, 로프 등을 취급했다. 중구 도시만들기 지원센터 권상구 사무국장은“2009년 김성운 할아버지의 증언을 받으러간 적이 있었다. 2010년 봄 다시 가봤더니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이 공간이 줄곧 비어있다는 것을 알고 관심을 두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카페 ‘삼덕상회’는 중구 도시만들기 지원센터의 설계 지원을 바탕으로 ‘대구의 재발견’ 팀의 공동 투자로 세워졌다. 중구 도시만들기 지원센터는 ‘북성로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사업을 계획해 지난 3월부터 10월까지 비어있는 북성로의 시대건축물(구한말~1960)을 몇 곳 선정해 설계비 지원을 했다. 전문가의 도움으로 근대 건축물의 원형을 복원하겠다는 것이 그 취지다. 그 결과 삼덕상회, 이기붕 부통령 박마리아 옛집, 구 야마구찌 도예점, 구 꽃자리 다방 등 총 4곳의 설계가 완성됐다.
당초의 계획대로는 설계만으로 끝날 사업이었는데 북성로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대구의 재발견’ 팀을구성하고 실제‘삼덕상회’건물을 리모델링 해냈다. 건축비와 시공비 등을 십시일반 모은 이들은 영남대 건축과 도현학 교수(설계 담당), 아삶공 김경호 대표(시공과 건축), 대구시문화재의원 김주야(코디네이터) 씨, 권상구 사무국장, 서양화가 천광호 씨 등이다. 삼덕상회 카페지기는 ‘대구의 재발견’ 팀이 결성될 초기 단계부터 간사를 맡았던 최지애 씨다. 삼덕상회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된 그이기에 선뜻 투자비를 부담했다.
사람이 머무는 곳
카페 삼덕상회는 2층 건물로 나지막한 구조가 안정감을 준다. 김주야 씨는 “기존 건물을 헐지 않고 시공을 한다는 점에서 다들 결과를 의심했었다. 막상 이렇게 만족할만한 결과물이 나오니 반색하는 분위기다.”라며“북성로 길의 건물들이 간판만 떼어내면 모두 다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건물들이다. 이번 작업을 계기로 근대 시기 경제 중심이었던 북성로를 다시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삼덕상회에서 지난달 첫 인문학 강좌로 미술비평연구회가 주관한‘근대 예술의 재발견’이 열렸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아홉 차례에 걸쳐 열린 이 강좌에는 강좌 당 20여 명이 찾으며 인기를 모았다. 삼덕상회 2층 세미나 실은 인문학 강좌 등을 비롯해 소규모 공부 모임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 가능하다.
김주야 씨는 “실험작인데 다들 반응이 좋다. 왠지 도시에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 이 공간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여러 가지 상상이 가능해졌다. 건축물과 사람이 서로 좋은 영향을 미치면서 도시를 행복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 대안이 북성로에 있지 않을까 한다.”라고 말했다.
이제 오후 6시면 거대한 공구, 공업사가 일제히 문을 닫고 퇴근하는 도심형 가로공단 북성로에서 모두가 문을 닫는 그 시간, 카페 ‘삼덕상회’가 새로운 손님을 기다린다.
문의/ 010-3613-8406
[출처] 특집 : 인문학이 있는 문화공간을 찾아서|작성자 대구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