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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출신 40대男, 교수 때려치고 이탈리아 가서는…

choib 2012. 6. 8. 11:32
박사 출신 40대男, 교수 때려치고 이탈리아 가서는…
[매일경제] 2012년 06월 08일(금) 오전 10:08   가| 이메일| 프린트

 


'도토레' 최정수 대표 "가족이 인생의 최우선, 늦은 나이 도전 후회없어"
"안정적인 직업이 있었지만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차에 우연히 읽게된 책 한 권이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5일 오후 기자와 만난 '도토레' 최정수(48) 대표는 만나자마자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의 서적 '디너 포 에잇(dinner for eight)' 을 내밀며 요리사로 새 삶을 시작한 계기를 설명했다.

최정수 대표는 인하대학교에서 공대 학사, 석·박사학위를 취득하고 LG 산전을 거쳐 경기과학대학교 조교수를 역임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카약, 등산, 스키 등 여러 취미를 즐기던 그에게 지난해까지만 해도 요리는 수많은 취미 중 하나에 불과했다.

여유를 만끽하던 그에게 변화가 찾아온 것은 지난해다. 정명훈 예술감독의 요리 서적을 우연히 접한 뒤 가족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은 최 교수는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책을 읽으면서 제 삶이 너무 집 회사만 반복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말에만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게 후회되더군요. 정명훈의 '디너 포 에잇'은 여덟명을 위한 식탁이란 뜻인데 당신 부부와 아들 셋, 그리고 그 배우자들이 함께 하는 미래의 식탁이 완벽한 식탁일 거라며 그 때를 위한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더군요."

공대 교수 출신인 그에게 이탈리아 유학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독학으로 배운 짧은 이탈리아어만으로 3대 요리인 파스타, 피자, 젤라또를 모두 배우는 것은 고행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는 배운 것을 완전히 체득하기 위해 매일 밤새 복습해야만 했다.

하지만 교수로 오르기까지 연마했던 학습방법은 요리 유학에도 도움이 됐다. 작은 것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았던 그의 성격이 완벽한 요리를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이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식당을 열 계획을 짤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지 인테리어 업체에 A4 용지 수십여장에 달하는 질의서를 보냈으며 식당 바닥에 쓸 타일도 분위기에 맞게 이탈리아에서 직접 공수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식당이 바로 '도토레'다. 도토레는 정통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표방하며 로마식 피자, 볼로냐식 정통 파스타를 만드는 곳이다.

"'도토레'는 이탈리아어로 박사란 뜻입니다. 제가 47년 동안 공학박사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피자 박사'로 인생 제 2막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최 대표가 정통 이탈리아 피자를 표방한 이유는 더 있다. 평소 피자가 허드레 음식으로 치부되는게 속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통 로마스타일 사각피자를 선택해 기존 업체들과 차별화를 선택했다.

그러나 국내 피자 업계는 이미 레드오션이다. 피자헛을 필두로 대형마트 등 수십여 브랜드가 난립하고 있다. 프리미엄 피자라고 해도 치열한 경쟁을 비껴갈 수는 없는 상황.

최 대표가 내세우는 무기는 재료다. 이탈리아 스타일에 맞는 재료를 엄선해 국내에 만연한 미국식 피자와는 다른 맛으로 승부한다는 계획이다.


"피자헛 등 미국식 피자가 너무 만연한 거 같아요. 정통 이탈리아식 피자라고 하는 곳들을 모두 가봐도 미국식 슈레드 치즈를 토핑하는 것을 보면서 재료에 충실한 정통 로마스타일 사각 피자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고급 재료를 쓴다는 생각의 바탕에는 가족들에게 먹인다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최 대표는 재료도 가격에 구애치 않고 가장 좋은 것만 사용한다.

"매일 저녁 자녀(아들, 딸)들이 와서 제가 만든 음식을 먹고 갑니다. 그런만큼 음식에는 정성을 다한다고 자신합니다."
47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 삶에 도전한 그에게도 두려움은 존재했다. 최 대표는 "도전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라며 "1년만 늦었어도 아마 이탈리아로 떠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10년 정도 사회 생활이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과감히 유학을 선택해 성공적으로 새 삶을 시작한 그에게 도전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삶에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선택을 할 때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하되 선택 후에는 전부를 걸고 노력한다면 실패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공학도 출신답게 0.1g 단위까지 꼼꼼하게 레시피를 만들었다는 그에게 체인 사업 가능성을 문의하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체인점 사업은 추호에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직접 관리하지 못할 거라면 점주, 소비자 모두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체인 사업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은 최 대표는 이탈리아 유학 일화를 예로 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탈리아에서 만난 친구들은 공장에서 사육되는 닭에서 나온 달걀을 먹지 않더군요.그만큼 재료가 중요하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저는 재료부터 음식이 시작되는 만큼 재료까지 충실한 레스토랑을 만들겠습니다. 가족을 위해 만든다는 마음을 잊지 않는 그런 '피자 도토레(박사)'가 되겠습니다."
[서환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