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10대가 아프다]집과 학교는 감시·통제의 감옥…‘10대’라는 형벌

choib 2011. 12. 15. 08:09

[10대가 아프다]집과 학교는 감시·통제의 감옥…‘10대’라는 형벌


왼쪽부터 ▲지난 12일 밤 서울 목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학원강습을 마친 한 중학생이 귀가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성적 때문에 부모와 친구들을 등지고 세상을 떠나면서 아이팟을 함께 묻어달라고 했다. 14년 인생의 유일한 동반자는 부모도 친구도 아니고 마음의 상처와 외로움을 달래주던 조그만 전자제품이었다.

한 고교생은 공부를 강요해온 엄마를 살해했다.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은 회원수 2만2000여명의 청소년 인터넷 고민상담 카페에 글을 올렸다. “다들 저를 깔보는 것 같아요. 울 때 거울로 제 얼굴을 쳐다보면서 ‘넌 왜 그러니, 안됐다’라고 혼자 위로하거나 동정해요. 학생이니까 제 꿈도 이뤄야 하니까 공부에 집중할 거지만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도 사회에 나가면 또 이 모습일 텐데…그냥 인생을 리셋하고 싶어요.” 많은 아이들이 공감하며 함께 울었다. 이 카페에는 하루에도 수십건의 고민상담글이 올라온다. 아이들은 저마다 ‘너무 힘들다’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털어놓는다.

정부가 선포한 ‘청소년 헌장’ 서문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청소년은 자기 삶의 주인이며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 가정·학교·사회·국가는 청소년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청소년 스스로 행복을 가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조성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어른도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진 채 신음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양과 질의 공부를 강요당하고, 마치 하루하루가 인생 전체를 결정하는 중대한 순간인 듯 어른들이 조성한 일상적 긴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생활공간인 가정이나 학교는 물샐 틈 없는 감시와 통제가 이루어지는 감옥으로 변해버렸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힌 아이들이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좌절하고 상처받고 방황하고 있다. 10대가 아프다.

청소년 관련 각종 통계는 아플 수밖에 없는 10대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15~19세 청소년 10명 중 7명이 가정과 학교생활 전반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통계청 ‘2011년 청소년 통계’). 성적이 좋은 아이도 나쁜 아이도 똑같이 학업스트레스를 받는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10 한국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고교생 10명 중 7명이 ‘학업성적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앞으로 해야 할 공부 때문에 걱정이 앞선다’고 답했다. 15~19세 청소년의 53.4%가 성적 및 진학문제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거나 자살충동을 느꼈다. 공부와 성적문제를 고민하는 15~19세 청소년의 비율은 2002년 48.9%에서 2010년 55.3%로 증가했다(통계청 ‘2011년 청소년 통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4개국 청소년 건강실태 국제비교조사’ 보고서 결과는 우리 아이들의 학업스트레스가 살인적 수준임을 보여준다. 조사 결과 ‘최근 1년 사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답한 비율은 한국(87.8%)이 가장 높았다. 다음은 일본(82.4%), 미국(81.6%), 중국(69.7%) 순이었다. 스트레스의 원인 1순위는 학업스트레스였다. 72.6%의 한국청소년이 ‘공부문제’를 스트레스 원인으로 꼽았다. 중국은 59.2%, 미국 54.2%, 일본 44.7%로 한국에 훨씬 못 미쳤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9~10월 중·고교생 7만56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에서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이 권고시간에 비해 크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계 고등학생의 주중 평균 수면시간은 5.5시간에 불과했다. 중학생은 7.1시간이었다. 미국 국립수면재단이 내놓은 청소년 수면 권고시간 8.5~9.25시간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한국의 아이들은 잠을 잘 시간에 학원을 다녀야 한다.

아이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통계청의 ‘2011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15~24세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었다. 인구 10만명당 청소년 자살자 수는 2008년 13.5명에서 2009년 15.3명으로 늘어났다.

‘청소년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행복하게 살 여건을 조성할 의무를 가진’ 부모와 선생님은 10대들의 고통을 덜어주는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청소년의 40.2%가 ‘동성친구에게 고민상담을 한다’고 답했다. 고민상담 대상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13.9%나 나왔다. 고민상담 대상이 아버지인 청소년은 3%에 불과했다(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10 한국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조사’).

소통이 되지 않는 아이들은 점차 부모를 멀리하게 된다. 그래서 또래에 집착하고, 그 또래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으려 똑같은 점퍼, 똑같은 운동화에 집착한다. 또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돌출행동을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10대가 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모험을 시작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른들은 10대의 고통을 대학 입학 전에 누구나 겪어야 할 통과의례처럼 여기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한국사회의 미래 또한 건강하기를 바란다면 10대가 짊어진 아픔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10대의 고통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이들의 아픔을 이들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향신문이 ‘10대가 아프다’ 기획을 하는 이유다.

■ 특별취재팀 = 류인하·박효재·곽희양·이재덕·이혜인·배문규 기자


<특별취재팀>

]“어른들이 경쟁사회 만들고 잔소리해요, 놀고 싶어요”
광고
ㆍ11월26일 밤 목동 학원가

11월26일 밤 11시. 서울 목동 학원가는 강의를 마치고 귀가하려는 아이들로 붐볐다.

경향신문 ‘10대가 아프다’ 취재팀은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독서실로 가던 중학교 2학년 김지현양(14·이하 학생 이름은 모두 가명)에게 말을 걸었다.

- 시험공부는 잘돼요?

김지현 =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요. 잘 안돼요. 제 나름대로는 정말 열심히 하는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열심히 안 하는 것처럼 보이나봐요. 엄마는 저보고 공부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대요. 근데 엄마랑 서로 때리면서 장난칠 정도로 친해요. 아빠랑은 바둑, 오목도 두고요. 그래도 부모님께 제 고민을 털어놓지는 않아요.

- 친구들 관계는 어때요?

김지현 = 저는 애들이랑 잘 지내는 편인데 학교 애들을 보면 힘이 세거나 노는 애들이 약한 애들만 골라서 심부름을 시키거나 아무 이유 없이 때리기도 해요. 옆에서 볼 때면 때리지 못하게 하고, 돈도 빼앗지 못하게 하고 싶어요. 노는 애들은 그런 애들이 노페(노스페이스 점퍼)를 입는다고 빼앗기도 해요. 그걸 인터넷에 올려 팔기도 하고…. 제가 힘이 세져서 막아주면 좋겠지만 괜히 나섰다가 까일 수도 있어서 못해요. 그런데 왕따랑 가까이 지내면 자기 수준이 낮아 보일까봐 애들이 안 놀아줘요. 학교 애들을 보면 노는 애, 평범한 애, 공부만 하는 애, 찐따로 구분하는데 찐따랑 놀면 찐따가 되는 거예요. 못생긴 애들이랑 놀면 다른 애들이 ‘너 왜 저런 애랑 놀아?’라고 그래요. 남자애들이 여자애들한테 인기 있으려면 잘생기기만 하면 돼요. 공부는 상관없고, 운동은 좀 상관있어요.

최은혁(14·중2년) = 전 최근에 여자친구와 헤어졌어요. 딱 하루 사귀었는데 걔가 남자친구는 부담스럽다고 해서…. 그게 요즘 고민이에요.

- 고민은 어떻게 해결하나요?

최은혁 = 고민은 친구들한테 이야기해요. 선생님과는 거리감이 느껴지고 엄마, 아빠한테는 쑥스럽고 그래서요. 그런데 선생님은 이상하게 저와 다른 애들을 차별해요. 다른 애들이 자면 ‘한번 봐준다’고 하는데 내가 자면 수행평가 점수를 깎아요. 필기점수와 수행평가 태도점수가 합해져서 성적이 나오는데 부모님이 태도점수가 낮다고 걱정을 하세요.

박준용(14·중2년) = 저는 성적이 계속 떨어져서 고민이에요. 부모님은 ‘분발하자’고 격려하시는데 저는 그냥 스트레스만 받죠. 저는요. 어른들에게 경쟁사회를 만들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비교당하는 게 싫어요. 그것도 주로 학교 성적을 가지고…. 부모님에게는 잔소리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그냥 어른들에게 ‘좀 닥치세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말이 심하죠?

중학교 졸업반인 김고은양(15)은 고교입시 원서를 낸 상태다. 그래도 여전히 학원을 다닌다. 고등학교 수업 준비, 즉 선행학습을 하는 것이다.

- 중학교 3학년 기말고사를 일찍 봐서 힘들었죠?

김고은 = 이번 시험기간 막바지에 힘들었어요. 고등학교 입시시험은 다 끝났고, 원래는 12월 중순쯤에 기말고사를 봐야 하는데 우리는 고교입시 때문에 모든 진도가 10월 말~11월 초까지 마쳐야 했거든요. 특히 외고를 준비하는 애들 때문에 수업진도 맞추기가 어려웠어요. 걔네들은 입시를 준비할 때 내신성적기록표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럴려면 학교 시험을 더 빨리 봐야 해요. 선생님도 힘들고 저희도 힘들었죠. 사실 저희 언니가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저에게 거는 기대가 좀 커요. 그런데 공부도 해야 하고,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야 하잖아요. 그 균형을 맞추는 게 힘들었어요. 내가 공부할 때 두는 관심사랑 애들이랑 놀면서 갖는 관심사가 다르니까 힘들었어요. 전 학교활동도 많이 참여하고 싶었는데 여유가 나지 않았어요. 제가 하고 있는 과학동아리에서 이번에 과학축전을 나갔는데 우리 부스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과학 체험활동을 하도록 도와야 했어요. 500명 정도가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물까지 갖춰야 했어요. 토·일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했고, 금요일에는 학교 끝나고 3~4시간 정도 했어요. 보람은 있었지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공부도 같이 해야 하니까. 엄마는 일찍 집에 들어오라고 하는데 거기 찾아온 사람들을 상대 안 하고 그냥 갈 수 없으니까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 부모님과는 잘 지내요?

김고은 = 엄마랑은 많이 친해요. 아빠랑은 별로예요. 맞벌이를 하시니까 대화할 시간이 많지는 않고, 친구들하고 지내는 시간이 더 많으니까 엄마, 아빠랑 약간 서먹하긴 해요. 대화도 주로 엄마는 ‘요즘 이 기간이 제일 중요하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시죠. 아빠랑은 별로 대화를 안 해봤어요. 아빠는 그냥 좀 어려워요. 그래도 집안에 한 명쯤 엄한 분이 있어야 하는 거고 그래야 질서가 잡히고 그런 거잖아요. 화가 나도 아빠 앞에서는 수그러들기도 해요. 나쁘기만 한 건 아닌 것 같아요.

- 친구들과 다투기도 해요?

김고은 = 제가 1학년 때는 공부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런데 2학년이 되니까 노는 애들도 많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그런 분위기에 맞춰가야 하는 거 있잖아요. 근데 제가 고지식한 면이 있어 애들이 불편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원래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었는데 그때 스키니진도 처음 입어보고, 놀이공원도 같이 가고 했어요. 그래서 성적이 떨어진 건지는 모르겠는데 저에게는 친구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해요. 제가 사실 2학년 때 노는 친구들이 너무 이해가 안돼서 공부사이트에 상담 글을 올려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대학생 언니가 ‘너는 공부를 잘하니까 공부가 중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다른 중요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답글을 달아줬어요. 그때 좀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친구들은 겉모습이 중요할 수도 있겠구나. 다른 것이 삶에서 더 중요하다 느낄 수 있겠구나’ 했죠.

자정 가까이 되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요약해준 프린트물을 손에 들고 표정 없이 학원차에 올라탔다.

- 공부 힘들죠?

이근철(15·중3년) = 우리가 하는 게 단순 암기잖아요. 당연히 재미없죠. ‘이게 아니면 안돼’라는 식으로 틀에 박힌 것을 외우고 있으니까요. 제가 살고 싶은 스타일대로 살고 싶은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남은 3년은 공부밖에 없죠. 아빠가 엄격하셔서 공부 외의 것을 못하게 하고 ‘공부만 잘하면 뭐든 해도 된다. 그런데 네 성적으로는 대학도 못 간다’고 하시니까 우선 공부를 해야 해요. 성적이 늘 고민이에요. 1·2학년 때는 부모님한테 사귀던 여자친구랑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다 했었는데 이제는 많이 줄었어요. 아빠랑 이야기하면 공부 이야기만 해야 하니까. 대화하는 게 어색해요. 그게 싫어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안 만들려고 해요. 공부 이야기만 하면 지겹고 싫증나니까.

- 그래도 꼭 해야 할 말은 있게 마련이잖아요?

이근철 = 사실 아빠와 선생님에게 ‘놀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요. 친구들한테도 ‘놀자’고 하고 싶어요. 일주일에 노는 시간이 합쳐봤자 5시간이 안돼요. 집에 있는 건 노는 게 아니니까…. 영화 보는 거나 자전거 타는 것 등은 절대로 안돼요. 사실 200일 정도 사귄 여자친구랑 얼마 전에 헤어졌어요. 제가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거든요. 그랬더니 여친이 ‘이제 너도 고교 준비해야 하니까 공부에 전념해서 나중에 좋은 사람 만나라’고 말했어요. 조금 아쉬워요. 영화도 보고 이대 가서 여친 옷 사는 거 따라가고 그랬는데…. 그래도 참아야 해요.

■ 특별취재팀 = 류인하·박효재·곽희양·이재덕·이혜인·배문규 기자


<특별취재팀>

]“솔직히 부모님이 말을 많이 걸어줬으면 좋겠어요”

청소년들이 지난 12일 밤 서울 신촌의 한 공원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ㆍ11월24일 밤 신촌 뒷골목

11월24일 밤 10시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뒤편 주택가. 경향신문 ‘10대가 아프다’ 취재팀은 신촌 일대를 취재하던 중 가출한 10대 4명을 만났다. 조현용군(16·고교 1년 자퇴·이하 모두 가명)과 중학교 3학년 박승규·이정호·한민우군(15)은 건물 한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정호군의 여자친구도 있었다. 아이들은 술을 마신 상태였다. 취재팀은 왜 이들이 밤늦은 시간에 신촌에 있는지 물어보았다.

조현용 = 동생들이 부모님에게 혼나서 제가 형이어서 같이 있어주려고 왔어요. 저는 학교를 안 가도 되거든요. 전 자퇴했어요. 교복 줄이는 것도 안되고, 머리 기르는 것도 안되고, 학교도 집에서 멀고 그래서 자퇴했어요. 아빠한테는 공부해서 집에서 가까운 데로 복학한다고 말씀드렸어요.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에 원서 내고 왔어요.

- 교복과 머리에 왜 이렇게 민감하죠? 자퇴까지 할 일인가요?

조현용 = 평범한 애들이야 여자도 안 만나고, 시내도 잘 안 나가고 맨날 공부만 하니까 쪽팔린 게 없는 거 같아요. 나는 그런 공부 같은 것도 못하니까 교복이랑 머리라도 괜찮아야지 안 그러면 여자애들한테 쪽팔려요.

- 여자애들이 머리가 이상하다고 해요?

조현용 = 여자들은 아무 말 안 하는데 나 자신이 쪽팔린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냥 학교에서 두발, 복장, 등교시간 같은 거 마음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 고민상담은 누구에게 주로 하나요?

조현용 = 친구에게 털어놓아요. 솔직히 지금 나이 때는요. 저도 그렇고 제 친구도 그렇고 친구가 가장 소중한 거예요. 가족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노는 애들 중에는 상종 못할 애들도 있지만 진짜 친구로 생각되는 좋은 애들도 있어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문제아처럼 여겨지는데 처지가 비슷하다보니 서로 의지하게 돼요.

정호가 여자친구와 인근 편의점 옆에 설치된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얘네 섹스한다!”고 소리쳤다.

- 말려야 할 것 같은데…. 이런 경우가 종종 있나요. 여자친구와 관계를 하는?

박승규 = 기회는 많은데 하면 안돼요. 쟤네도 그런 거 아니에요. 아빠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저도 그런 짓 안 하려고요. 아빠처럼 안 하려고 해요. 도박도 안 하고, 여자도 안 만나고. 사실 제가 전과가 있어요. 폭행 하나, 절도 하나. 폭행은 학교 애 하나를 30분 동안 때렸어요. 뒤에서 제 욕을 했거든요. 그 이후로 학교에 안 나갔어요. 절도죄는 오토바이 하나 훔쳐 탄 건데 그냥 친구들끼리 있다가 심심해서 스트레스 풀려고 오토바이를 훔쳐다 차가 없는 도로에서 역주행을 한 거예요.

- 아빠가 어떠신데요?

박승규 = 제가 세 살 때 엄마랑 이혼했어요. 엄마가 날 버리고 갔어요. 한 번 버렸으면 자식이 아니죠. 그년(엄마)도 잘 살고 있어요. 아빠가 도박을 했는데 한 달에 버는 돈이 없어요. 다 도박으로 써버려서. 아빠랑 이야기는 자주 해요. 아빠가 도박 앞으로 안 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해요. 아무리 그래도 전 친구보다 아빠가 소중해요. 전 아빠한테 ‘철 좀 들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고 싶어요. 친구들한테는 ‘갈 때까지 가보자’고 말하고 싶고, 선생님한테는 ‘편하게 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 담배 피운다고 선생님이 금연학교 보냈어요. 일주일 동안 금연학교에 있었는데 진짜 X 같아요.

고교 1학년의 연상 여자친구와 화장실에서 나온 정호는 대뜸 욕을 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정호 = 집에 들어가면 엄마가 짜증나게 시비조로 말해요. ‘너 차라리 집을 나가라. 밥 좀 축내지 말라’고 해요. 중학교 1학년 이후로 별 이유도 없이 이런 말을 해요. 처음에는 조금 슬펐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흘려 넘겨요. 그런 말만 듣다보니 집에 그냥 들어가면 엄마에게 ‘말 걸지 말라’고 하고 문을 닫아버려요. 공부 잘하는 누나한테는 그런 말을 안 해요. 누나 말은 전부 다 믿고, 해달라는 건 다 해줘요.

저한테 들어가는 건 100원도 아까워하죠. 그런데요. 엄마한테 소리치며 말 걸지 말라고 했지만 솔직히 엄마가 말을 많이 걸어줬으면 좋겠어요. 시비조로 말하지 말고요. 아버지하고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항상 자기 말이 맞다고만 하고 매부터 드세요. 그러고요. 학교도 진짜 개X 같아요.

- 왜요?

이정호 = 짜증나게 해요. 뭐해라, 뭐해라. 꼭 명령하는 것 같아요. 뭐 안 하면 맞는 거고, 욕하고…. 부모님이야 한 달에 대여섯 번 이야기하는데 그냥 학교나 잘 나가라고 말해요. 학교 다니기 싫은데.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정호는 유급 상태다.

이정호 = 전 진짜 선생님한테 다른 애들에게 유급만은 절대 시키지 말아달라고 하고 싶어요. 솔직히 쪽팔리잖아요. 학교 안 나가서 유급 받았는데 한 살 어린 애들하고 학교 다니면 진짜 짜증나요. 진짜 선생님들이 힘들게 해요. 말 안 들으면 때리고 욕하고….

언어폭행이라고 하잖아요. 욕먹으면서 학교 다니기 싫었어요. 저 중학교 1학년 때는 착했는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몇 달 학교를 안 갔어요. 한 명이 가출하면 다같이 나가요. 리더 격인 애가 있어요. 걔가 ‘답답하다’고 하면 그 밑에 있는 애들도 따라나가는 거예요. 집이 편해야 학교도 나가고 하는데 부모님 눈치만 받다보니 학교도 나가지 않게 됐어요.

민우는 가출한 지 이틀째 됐다. 지난밤은 용인의 한 찜질방에서 보냈다.

한민우 = 4만원 들고 이틀 전에 나왔어요. 돈 떨어지면 물류센터나 홀서빙 같은 데서 하루씩 일해요. 오는 데 차비만 만 원 들었어요. 오늘도 찜질방에서 잘 거예요. 술은 방금 빌라 지하에서 먹고 나왔어요. 저 술 먹고 담배 피우고 해서 공부를 안 했어요. 중3인데 이제 고등학교 가려고 하니까 후회되죠. 며칠만 이러다 집에 들어가야죠. 우리 부모님은 제가 집을 많이 나가서 별로 걱정 안 해요. 아빠는 ‘고등학교만 잘 다녀라’라고 말씀하세요.

- 일진이에요?

한민우 = 아뇨. 이진이에요. 싸움은 중간 정도 해요. 있잖아요. 애들 이야기 듣다가 저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부모님들도 자기 청소년 때는 그랬으면서 ‘뭐뭐 하지 말라’고만 해요. 아이들 잘되라고 하는 소리지만 알아서 철드는 거지, 하지 말라고 해서 철드는 건 아니잖아요. 아빠는 담배 피우면서 저한테는 피우지 말라고 하고 그러면 좀 안 좋죠. 아빠부터 끊으면 제가 끊는다고 했는데 아빠도 끊는다고 해놓고 안 끊어요. 아빠랑 자주 이야기해요. 아빠는 저보고 ‘나쁜 씨앗은 심지 말라’고 해요. 전 학교에 흡연구역을 만들고 싶어요. 어차피 뒤에서 피울 건데. 그리고요. 선생님들 옷 같은 거 보면 자기들은 XX… 좋은 양복 입으면서 우리더러 교복만 입으라고 그러고 그러면 안되죠.

- 이러면 행복해요?

한민우 = 전혀 행복하지 않아요. 그냥 공부 못한다고 해도 평범한 애로 돌아가고 싶어요. 중학교 1학년 때는 반에서 4등도 했어요.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어요. 다시 공부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지만 지금은 되돌리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담배 피우고, 싸우고…. 제가 저지른 게 있잖아요. 주워 담기 힘들어요. 저랑 노는 애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요.

그나마 하는 생각이 군대 가서 말뚝 박을 생각 정도고요. 그냥 공부 잘하는 애들이 제일 부러워요. 우리도 말로는 ‘지금부터 공부하자’고 해요. 그런데 말뿐이에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쁜 걸 알면서도 친구 때리고 ‘삥’ 뜯는 애들은 습관이 된 거예요.

- 세상에 뭐가 소중한 것 같아요?

한민우 = 친구가 짱이죠. 그거 말고 솔직히 두려운 건 없어요. 친구들이 나를 멀리하면…. 그게 두려운 거겠죠.

■ 특별취재팀 = 류인하·박효재·곽희양·이재덕·이혜인·배문규 기자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