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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
[자본주의 4.0 제3부 교육에 답이 있다] [4] 인적자본 싹 꺾는 한국학교
공부 못하면 문제아 취급 - 다른 분야에 관심 가지면
"사람대접 못 받는다" 무시… 창의적 인재들, 우울증 앓아
가난 대물림 끊기 힘들어 - 사교육 못 받는 저소득층, 한 번 뒤처지면 낙오자 돼
인천에 사는 중학교 3학년 박모(15)군. 반에서 성적이 중간쯤인 박군은 지난 6일 학교에서 1교시부터 6교시에 걸쳐 영화를 봤다. 중간에 잠을 자기도 했다. 고교 입시 전형이 거의 다 끝나자 교실에서 종일 영화만 튼 것이다. 요즘 고등학교 선행학습을 하는 학생은 반에서 2~3명 정도. 다른 친구들은 하루 종일 멍한 얼굴로 영화를 보거나 떠들거나 책상에 엎어져 잠을 잔다. 박군은 초등학교 때만 해도 꿈이 '의사'였지만, 이젠 되고 싶은 게 없다. "의사는 공부 잘하고 잘사는 애들만 하는 거라대요. 일반계 가서 대학에 못 갈 것 같은데, 꿈이 무슨 소용이에요." 꿈이 사라진 박군에게 학교생활은 행복하지 않다. "학교는 그냥 기계적으로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아무 생각도 없고 …."
학생의 소질과 잠재력을 이끌어내 미래 인재로 키워내야 할 교육 현장에서 우리나라 대다수 학생들은 불행하다고 느끼며 고달파한다.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끌고 가야 할 수많은 예비 인재들이 오로지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하는 주입식 교육에 짓눌려 싹을 피우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상위 10%만 만족하는 교육 구조 속에서 나머지 학생들은 불만을 갖는다.
◇인재를 억누르는 교육
우리나라 학교 수업은 개인의 수준, 적성과 상관없는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학생들은 수업에 흥미를 갖지 못한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중1 이모(13)양은 "오늘 하루 종일 수업 시간에 우리 반 40명 중 교사에게 질문을 한 아이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성적이 하위권인 이양은 "좀 알아야 궁금한 것도 있을 텐데, 아예 모르니까 궁금한 것도 없고, 애들 앞에서 물어보는 것도 창피하다"며 "수업이 재미있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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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에 사는 고3 최모(18)군은 중학교 때 악기 연주나 식물을 기르는 것이 좋아 특성화고에 가고 싶었지만, 어른들의 강요로 일반고에 가야 했다. 교사와 부모님은 "인문계는 나와야 사람대접 받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국·영·수 수업을 위주로 하는 일반고에 다니는 것이 괴로웠다. 수업 시간에 딴생각을 하거나 잠을 자기 일쑤였던 최군은 급기야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면서 병원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유한호 박사는 "학교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관심 없고 이해할 수 없고 어려운 내용을 배우기 때문인데, 우리나라 학교는 한번 뒤처진 아이들이 다시 따라갈 수 있도록 끌어주지 못하고 있다"며 "초·중학교에서부터 그러니까 고등학교쯤 가면 상당수 학생들이 불행하고 공부를 포기해 버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입시만 강조하는 교육, 가난 대물림
입시공부 외 다른 분야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이 공교육 속에서 인재로 크기는 더욱 어려운 게 한국 교육의 현실이다. 서울 강남 지역에 사는 중3 김모(15)양은 성적은 최하위권이었지만, 춤과 노래에 관심이 많았다. 예술고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공부는 못하면서, 딴짓만 하고 있다"며 문제아 취급을 받았다. 수업 시간에 잠자고, 문제학생들과 점점 가까워졌다.
어린이재단 연수종합사회복지관의 서윤희 사회복지사는 "특히 저소득층 학생들은 사교육도 받지 못해 공부에 뒤처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아이들을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낙오하게 만드는 교육으론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최상덕 한국교육개발원 연구기획실장은 "정답 맞히기 위주 교육, 호기심과 동기(動機)를 주지 못하는 교육으론 학생들을 창의력 있는 국가의 인재로 키워내지 못한다"며 "'창조'와 '혁신'이 무시되는 교육으론 경쟁력 있는 인재가 나오기도,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김연주 기자 carol@chosun.com]
[감혜림 기자 k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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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는 수단으로, '좋은 성적'과 '학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여전히 주입식 교육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0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우수한 성적과 학벌'을 가장 많이(36.3%) 꼽았다. 창의성(24.7%), 바른 인성(17%) 등을 꼽은 학생들도 있지만 '본인의 노력이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 학생은 8%에 불과했다.
수업 환경도 여전히 주입식 중심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에서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닌 토론이나 학생들이 발표를 많이 하는 수업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를 묻는 질문에 67.3%의 학생들이 '없거나 10% 미만' 이라고 답했다.
학생들 역시 수업시간에 수동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질문을 어느 정도 하느냐는 질문에 절반 가까운 응답자(42%)가 '한 번도 안 한다'고 답했다. 또 전체 응답자 가운데 45.4%는 수업 시간에 교사에게 질문을 하거나 교사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냈다가 꾸중을 듣거나 무시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학부모들도 교육 현실에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내 교육시스템에서 학생들의 개성·특성을 반영한 인적자원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응답 학부모들의 70%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 교사의 가르치는 방식·자질(34.9%), 교과목 중심으로 짜인 커리큘럼(26.6%), 공부 잘하는 학생만 우대받는 분위기(14.7%) 등을 꼽았다.
[탁상훈 기자 if@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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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스톡홀름의 뉘아(Nya) 학교 7학년(우리의 중1) 마야(13)양은 아침에 눈을 뜨면 빨리 학교에 가려고 한다. 학교 수업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어 시간엔 연극 공연을 통해 문학 작품을 배우고, 사회 시간에는 직접 동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올해 초 수학이 좀 뒤떨어졌지만 마야양과 부모는 오히려 기뻐했다. '반복학습반'에 따로 편성돼 수학 교사의 친절한 1대1 지도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야양은 이제 수학 과목에 큰 자신감이 생겼다.
이 같은 '자신감'과 '행복감'을 한국의 일반적인 공교육 현장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 학생들의 '학력'은 겉보기론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9년 학업성취도 국제 비교 연구(PISA)에서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읽기·수학 1~2위, 과학 2~4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2007년 수학·과학 성취도 비교연구(TIMSS)에서는 수학 2위, 과학 4위였다.
그러나 화려한 성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공부에 대한 '자신감'과 '흥미도'가 모두 밑바닥 수준이기 때문이다. 2007년 TIMSS 조사에서 한국 학생 중 수학 과목에 자신감이 높다는 학생의 비율은 29%밖에 안됐다. 전체 조사 대상 49개국 중 43위였다. 이스라엘이 59%로 1위, 미국이 53%로 6위, 스웨덴은 49%로 12위였다.
수학에 흥미가 높은 학생의 비율 역시 한국이 43위(33%)였다. 과학에 대한 자신감은 29개국 중 27위(24%)였고, 과학에 대한 흥미도는 29개국 중 29위(38%)로 '꼴찌'였다. 성적은 높지만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고 있는 현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학교 만족도'에서도 한국 학생들은 낮은 순위였다. 2009년 PISA 연구 결과 중 '교사는 학생의 말을 정말로 잘 들어준다'는 조사 항목에서 '그렇다'고 대답한 한국 학생은 57%에 그쳤으며, 한국은 조사 대상 38개국 중 36위였다. 학교생활 만족도가 주요 평가 지표 중 하나인 청소년의 행복지수 역시 66점(평균값 100점)으로 조사 대상인 OECD 23개국 중 최하위인 23위였다.
차명호 평택대 교육대학원장은 "우리 학생들에게 학교 공부란 유익하고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잘해야 하는 것이 돼 버렸다"며 "이런 식으로 외형적인 점수 올리기에만 신경 쓰다 보면 정작 사회에 나가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