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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스펙' 넌 어디까지 가봤니?>-上
choib
2011. 8. 4. 08:38
<'취업 스펙' 넌 어디까지 가봤니?>-上
토익평균 10년만에 60점↑,절반이 어학자격증 보유
대학생 늘었는데 일자리는 그대로..갈수록 高스펙
(서울=연합뉴스) 기획취재팀 = "'세탁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이미 항균에 삶음 기능까지 갖춘 세탁기들이 바글바글했다"
가전제품 매장을 묘사한 문장이 아니다. 세탁기로 대체된 이는 그저 그런 이력으로 취직에 번번이 미끄러지는 소설의 주인공 '철수'다.
소설 '철수사용 설명서'(전석순 작, 2011 오늘의 작가상)는 20대 청춘이 이 시대에 어떻게 상품화되고 소비되는지를 자못 불편한 방식으로 기술한다.
소설에서 구직자는 매장에 놓인 가전제품과 다를 바 없다. 이것저것 스스로 성능을 갖추고선 기업에 선택되기만을 기다린다.
애초 기계의 사양을 뜻하는 'specification'의 한국식 약어인 '스펙'은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사람에게 쓰인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취업난이 점점 심해지자 대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끝을 모르는 '스펙 무한경쟁'에 뛰어들었다.
입사를 위한 절대적인 기준을 충족하는 게 아닌 입사 경쟁자보다 비교우위를 차지하려다 보니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스펙을 쌓아야 했다.
이러다 보니 스펙의 과잉 현상이 생겨났다. 입사에 굳이 필요없는 스펙을 갖춰야 하는 '오버 스펙'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전석순씨는 "스펙 경쟁을 하다가 모두 천재가 될 판이다"라고 꼬집었다.
서울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1990년에 국내 대기업에 입사한 김모(48) 부장은 "입사할 때 낸 토익 성적이 600점을 조금 넘었던 것 같다"며 "그때는 대학생이 적었고 일자리가 많아 사실상 대학 졸업장으로 4학년 1학기에 웬만한 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 회사에 올해 입사한 정모(29)씨는 '백수' 생활을 1년여간 했다.
정씨는 토익이 만점에 가까운 970점, 학점도 재수강을 반복해 3.9로 높였다. 캐나다로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중국어 자격증과 광고 공모전에서 입상 경력도 보탰다.
정씨는 "요즘은 스펙 때문에 해병대를 가는 친구도 있다"며 "입사 지원서에 남과 다른 특이점을 한 줄이라도 더 쓰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김 부장과 정씨는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지만 20년 만에 진입 장벽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높아진 셈이다.
삼성그룹의 한 계열사 인사담당자는 "2000년 이전만 해도 대졸 신입사원 중 토익 3등급(620점) 이상이 전무했다"며 "90년대 초반엔 토익 1등급을 따면 130만원을 주고 토익 학원비도 전액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공식적으로 입사 시 토익 점수 하한이 730점인데 거의 다가 900점대"라며 "석 달 전 대졸 신입사원을 설문조사해보니 해외 연수자가 80%가 넘었고 석사 학위자도 80년대 후반엔 10% 정도였는데 지금은 절반 이상"이라고 전했다.
토익 시험을 친 구직자의 평균 점수는 2000년 580점에서 2005년 617점, 지난해 639점으로 10년 만에 60점이 올랐다. 너도나도 높은 점수를 받으려는 경쟁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이웃 일본의 구직자 토익 평균 점수는 2008년 456점, 2009년 460점, 2010년 485점으로 같은 기간 한국보다 154∼180점이나 낮았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초 4년제 대학을 졸업한 20∼50대 직장인을 설문조사해 보니 세대가 지날수록 고(高)스펙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해외연수를 했다는 답은 50대가 2.0%인데 비해 20대는 10.4%였고 어학 자격증은 50대가 10.2%였지만 20대는 52.4%로 차이가 벌어졌다.
공모전 도전, 인턴, 봉사활동 경험을 했다고 대답한 직장인도 20대는 그 윗세대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비정규직이나 하향지원을 해봤다는 응답은 40·50대가 25% 정도였지만 20대는 46.8%로 높았다.
대학 졸업 당시 입사희망 기업이 대기업이었다는 답은 50대가 49.0%였으나 20대는 28.6%였다.
20대가 그 이전 세대보다 취업 스펙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지만 취업 문턱은 더 높아진 것이다.
취업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은 일단 대학생 수가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1993년 167만명(대학원생 포함)이던 대학생 수는 2010년 313만명으로 배가 늘었다. 2008년 전문대 이상 대학 진학률은 83.8%로 일본(56.2%), 미국(53.2%), 프랑스(41.0%), 독일(35.4%)보다 월등히 높다.
이에 따라 25세 이상 인구에서 대졸 이상의 비율이 1985년 10.0%, 1990년 14.1%에서 2005년 31.4%로 뛰었다.
한국노동연구원 금재호 박사는 "4년제 대학생이 20년 만에 급증했지만 대기업 정규직이나 공무원 등 이들이 갈만한 일자리는 이에 따라가지 못했다"며 "이런 불일치 때문에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려고 스펙 경쟁이 과열됐다"고 말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993년 양질의 일자리는 양질의 노동력보다 55만개 많았지만 1997년을 기점으로 역전됐고 격차는 점점 벌어져 지난해엔 일자리가 384만개나 적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교수는 "기업이 21세기 들어와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몰랐던 게 스펙 경쟁의 원인"이라며 "세계화 시대가 됐다고 해 일단 영어가 필요할 것 같아 영어와 성적 우수자를 뽑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우 교수는 "학생들도 자기 능력을 개발해 취업하고 싶은데 뭘 개발해야 수요자가 원하는지 모르다 보니 당장 수치로 나오는 영어와 학점에 집중했고 회사는 회사대로 스펙이 좋은 학생을 뽑았는데 업무 성과는 나지 않자 혼란에 빠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hskang@yna.co.kr
vivid@yna.co.kr
<'취업 스펙' 넌 어디까지 가봤니?>-中
연합뉴스 기사전송 2011-08-04 07:30 최종수정 2011-08-04 08:37
기업들 점차 "높은 스펙과 업무 능력은 별개" 사회 경쟁력 저하-대학은 취업 준비기관 전락 양극화 심화.."기업이 인재양성 비용 개인에 떠넘겨" (서울=연합뉴스) 기획취재팀 = 구직자의 스펙은 끝을 모르고 높아지지만 정작 기업들은 스펙과 업무 능력은 별개라고 평가한다. 오히려 취업을 하려고 동료와 치열하게 스펙 경쟁을 하다 온 신입사원이 협업과 리더십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교수는 "스펙 경쟁을 하면서 협업을 잃어버렸다"며 "회사에서 주위와 소통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조정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데 (지금처럼) 스펙 경쟁으로는 이런 협업 능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우 교수는 또 "대학생의 스펙은 사교육을 통한 이른바 '엄마표 스펙'인데 이런 사람이 취직은 더 잘 될지 몰라도 정년이 35세라고 본다"며 "30대 중반이면 관리자 역할을 해야 하는 데 엄마표 스펙만으론 취업 다음의 단계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NHN 노세관 채용전략팀장은 "회사에서 약 5년간 스펙과 업무 능력의 상관관계를 면밀히 조사해 봤는데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고 결론났다"며 "취업만을 위한 스펙을 쌓은 지원자는 정해진 질문에는 청산유수처럼 모범답안을 말하는 데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그런 유형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노 팀장은 "스펙 선발 방식의 한계를 확인한 뒤 올해부터 시간과 비용이 걸리더라도 업무와 관련한 과제를 주고 보고서를 받는 형태로 바꿨는데 회사에 대한 충성도나 성과가 훨씬 나았다"고 말했다. 취업포털 사람인 임민욱 팀장은 "다른 사람이 워낙 다양한 스펙으로 취업했다는 말 때문에 불안해져 이것저것 모든 스펙을 쌓다보니 '고스펙 평준화' 현상이 생겼다"며, "스펙이 좋다고 해서 취업이 잘되는 것만도 아니고 이 사람들이 직장에서 일을 잘한다고도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스펙 경쟁이 과열하면서 부작용도 심각해지고 있다. 우 교수는 "대학생 대부분이 똑같은 공부를 하게 되면 취업에 성공한 사람 외엔 그 지식이 사장돼버려 결국 사회 전체의 경쟁력은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 캠퍼스가 인문학적 소양과 전문 지식을 키우는 아카데미 본연의 역학을 잃고 취업 준비기관 또는 알선기관으로 변질한 점도 큰 폐해다. 자신을 스스로 탈인격화하면서 개인의 삶도 피폐해지게 마련이다. '철수사용 설명서'의 저자 전석순씨는 "스펙 경쟁 때문에 사람이 표준화돼가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사람마다 잘할 수 있는 게 다 다른 데도 똑같은 사람이 되도록 하는 구조는 위험하고 심각한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달 대졸 구직자 347명을 설문조사해 보니 취업 준비 중 가장 어려운 점으로 '경쟁자의 높은 스펙'(42.7%)을 꼽았다. 사람인의 올해 5월 설문조사에선 구직자의 86.8%가 스펙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스펙 스트레스'의 원인으론 자신의 스펙이 지원자격에 못 미치거나 고스펙 보유자가 너무 많다는 대답이 대다수였다. 이 때문에 우울증, 불면증, 수면장애, 음주·흡연 증가, 대인 기피증을 겪고 있다는 구직자도 각각 30% 안팎으로 조사됐다. 스펙 쌓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잡코리아가 작년 5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사교육비는 월평균 23만원으로 2008년 같은 조사 때보다 37.3% 많아졌다. 스펙 쌓기도 가정 형편에 따라 양극화하는 고비용 구조인 셈이다. 당장 취업을 해야 하는 구직자들도 불만이다. 취업을 앞둔 조병래(연세대 4년)씨는 "취업시장이 스펙은 모범생다운 것을 원하고 경험은 자유롭고 틀을 깨는 걸 원해서 '어쩌란 건가'라는 생각도 든다"며 "이력서에 보면 빈칸이 많은데 (어떻게 해서라도) 그 칸을 채워야 안심이 된다"고 털어놨다. 최근엔 인턴 경력이 중요해지면서 인턴 경쟁도 정규 입사경쟁 못지않게 치열해졌다. 사람인 임민욱 팀장은 "인턴에 들어가기 위해서 다시 스펙을 쌓아야 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인턴 경력이 있어야 인턴으로 뽑는 곳도 있다고 한다. 기업이 인재 양성의 비용과 노력을 개인에게 미룬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금재호 박사는 "외국에서 대학은 학문과 소양 교육을 맡고 실제 필요한 능력을 키우는 '온 더 잡 트레이닝'은 기업이 해야 할 일"이라며, "실전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원하다 보니 취업 스펙이 높아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7월 국내 기업 인사담당자(204명)를 설문조사한 결과 기대하는 토익 평균 성적은 731점이었다. 반면 일본 토익 주관기관인 IIBC가 지난해 일본 기업 350곳을 조사해보니 기대 성적이 546.7점으로 200점 가까이 낮았다. 두 조사는 표본 오차가 있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잠재력 있는 인재를 키우기보다 당장 쓰기 편한 '레디메이드'(기성품) 신입사원을 고르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hskang@yna.co.kr vivid@yna.co.kr |
<'취업 스펙' 넌 어디까지 가봤니?>-下
연합뉴스 기사전송 2011-08-04 07:31 최종수정 2011-08-0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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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인턴만 잘해도 취업-日 대학생활.적극성이 척도 과잉 스펙 기업이 먼저 나서서 해결해야 (파리.도쿄.서울=연합뉴스) 김홍태 이충원 특파원, 기획취재팀 = 대학생들의 취업 '과잉 스펙'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들의 사례는 롤모델(Role model)이 되기에 충분하다. 역사, 제도, 가치관은 다르지만 우리와 다른 점을 추적하다 보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 '실습 프로그램이 스펙쌓기'-프랑스 프랑스 대학생들도 물론 취업을 위해 '스펙쌓기'를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문어발식 스펙쌓기'보다는 실제 자신이 나중에 취업할 분야에서 직접 일해보는 실습 위주의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스펙'을 쌓는다. 무조건적인 '스펙쌓기'가 아니라 어떤 것을 배워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인턴에 나선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차이가 크다. 단순히 겉보기에 좋은 스펙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회사나 기관 등에 지원을 해 관련 경험을 쌓아가기 때문이다. 일반 대학생들의 경우 보통 1∼2학년 때는 용돈을 버는 차원에서 아르바이트나 인턴을 하지만 3학년이 되면 자신이 선호하는 분야에서 인턴 실습을 한다. 또 대학원생이나 대학 졸업생들도 자신의 전공 관련 업계에서 인턴 직을 찾아 6개월에서 1년 정도 일하는 경우가 많다. 고급 엔지니어를 배출하는 3년제 그랑제콜은 인턴십이 아예 제도화돼 있다. 보통 1학년 때는 '실무 훈련'을 받고, 2학년 때는 본격적인 '기술 실습'을 거친 뒤 3학년 때는 인턴으로서 실제 일을 하면서 실무를 익힌다. 특히 각 그랑제콜은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대학생들을 인턴으로 받아들여 훈련을 시키는데, 인턴을 하다가 그 직장에 정식 고용되는 경우도 많다. 기업들은 그랑제콜 학생들을 이미 능력이 검증된 인재들로 평가하고 있다. 그랑제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교 졸업 후 2년의 준비기간을 거처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지원자가 어느 분야에서 얼마나, 어떤 생각을 갖고, 또 얼마나 성실하게 인턴을 했는지를 우선 순위로 둔다. 그랑제콜이나 인턴 과정 자체가 스펙인 셈이다.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직장에서 실제 업무에 도움이 되는 사원을 원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경우도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3학년이 되면 2주 정도 의무적으로 인턴을 이수하도록 커리큘럼이 짜여져 있다. 사회생활을 미리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이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유명 대기업에 입사하려면 어학 점수가 중요하고 다른 스펙들을 많이 쌓은 지원자가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영어점수는 토익 750점 이상이거나 구술면접을 통과할 정도면 되고, 스펙도 기업들이 해당 분야를 먼저 보기 때문에 해당 분야 인턴십을 제대로 이수한 경우라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대학 졸업생들은 말한다. 일반 대학에서 상경계열을 졸업한 학생들도 더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2년간 3만∼4만유로에 달하는 MBA 과정을 밟거나 그랑제콜에 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들은 그랑제콜이 파트너십을 체결한 기업의 지원을 받아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일반대학을 나와 상경계 그랑제콜을 거쳐 직장 생활 3년째인 나디아 페크레스(26)는 "그랑제콜 3년간 매년 인턴을 했기 때문에 스펙 쌓는 것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기업에서 열심히 실습을 해 인정을 받으면 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 '구직자들이 신경 쓰는 건 이력서 쓰기'-일본 일본 가쿠슈인(學習院)대 일어교육과 4학년생인 신부헌(28)씨는 최근 일본 주택전문 기업인 스미토모(住友) 임업과 니혼게이자이신문사에 취업 원서를 내놓았다. 대학 재학 중 재일한국유학생연합회 회장을 지냈을 정도로 활동적인 성격인 신씨는 스미토모 임업의 신규사업 개발 부서에서 일하거나 니혼게이자이신문사의 기자가 되길 원한다. 신씨가 이 같은 유망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신경을 쓰는 건 토익이나 토플 점수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이력서 양식에 자신의 장점, 지원 동기 등을 자세히 적어넣는 '엔트리 시트'를 잘 쓰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기업에선 학교 성적이나 토익 점수 같은 '스펙'보다는 대학생 시절에 뭘 하고 지냈는가, 얼마나 적극적인가라는 점을 중시하거든요." 영어 점수는 토익 600∼700점대 성적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서류 전형을 거치고 나면 기본 학력·적성 검사에 해당하는 'SPI(Synthetic Personality Inventory)' 시험을 치러야 하는 회사가 많다. '유토리(여유) 교육'과 '학력 중시 교육'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 보니 요즘 일본 젊은이들의 기초 학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기본 학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시험이어서 일반적인 대학생 수준의 지식과 추리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후에는 면접을 여러 차례 치르는 회사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일본 기업은 영어를 잘 구사하는 인재가 필요하지 않은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일본 기업도 영어를 잘하는 인력이 필요하지만 한국 기업과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한국의 대기업이 각종 '스펙'을 갖춘 인재를 뽑는다면 일본 기업은 의욕이 있는 젊은이를 뽑아 장기간의 연수 기간에 필요한 '스펙'을 갖추게 한다. '산토리푸드'는 입사 반년 전부터 18개월 동안 장기연수를 시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종합 상사인 이토추(伊藤忠)는 영어를 못하는 사원은 영어권으로 발령내 영어 구사 능력을 갖추게 하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사원은 비(非)영어권에 발령내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본 기업은 한국과 달리 기업 초봉이 그리 많지 않고, 사실상의 채용 시기가 빠르다. 일본 대졸자의 초봉은 대개 20만∼30만엔 수준이다. 여기서 한국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각종 세금과 준조세를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불만을 살 정도다. 상당수 일본 젊은이들이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상황도 반영돼 있다. 일본 기업은 정식으로 채용하기 전에 대학 3, 4학년생들을 '내정'한다. 일본 경제 사정이 좋았던 1990년대나 2000년대까지만 해도 상당수 학생들이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면 기업의 내정을 받았다. 최근에는 3학년 내정은 줄어들고, 내정 시기가 점점 늦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아직도 이른바 명문 국립·사립대생들은 4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까지 취직할 곳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과잉 스펙' 철폐 기업이 먼저 나서야 과잉 스펙은 청년 실업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만큼 단시간 내 해결하기는 어렵다. 희망적이라면 앞으로 10년 정도만 지나면 청년층 인구의 감소로 문제가 자연적으로 풀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향후 6∼7년 가량 청년실업은 여전히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과잉 스펙 문제는 채용의 주체인 기업이 앞장서야 한다. 금방 수치화되는 스펙보다는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장기적으로 실무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잣대로 인력을 채용하는 시스템을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현재 대학생이 쌓는 스펙이 실제로 기업이 필요한 사원의 능력과 괴리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는 순간 기업들은 이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채용 방식에 반영해야 한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교수는 "채용 문제는 민간이 공공 쪽을 따라 하는 경향이 큰 만큼 공기업이 먼저 시작하는 게 좋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한국전력, 가스공사, KT가 영어 성적을 채용 기준으로 삼지 않겠다고 하면 다른 기업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우 교수는 "앞으로 2∼3년 안에 협업 능력이 중요해질 텐데 기업 입장에서 귀찮더라도 숫자로 표시되는 스펙보다 이런 능력을 갖춘 인재를 가려내는 방향으로 채용 방식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청년 실업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학벌주의 타파도 해묵은 과제다. 10∼20년이 걸리더라도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하는 과제다. 기업들은 학력보다 잠재력, 창의력을 보고, 정부는 대학 진학률이 한국보다 40%포인트 이상 낮은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고교만 졸업해도 양질의 일자리를 잡고 인생을 노후까지 보장받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노동연구원 금재호 박사는 "지금은 학력 과잉 사회여서 고교 졸업생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자리도 대학생을 뽑는다"면서 "기업들이 전향적으로 고졸 인력을 우선 채용하면 학벌 사회가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 박사는 또 "정부의 일자리 만들기 정책도 지금보다 더 급진적이고 전진적이 돼야 한다"며 "이런 정책이 영구적으로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인구 분포를 볼 때 길어야 7년 정도일 것이므로 정부와 기업, 사회가 조금씩 양보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영상있음> hongtae@yna.co.kr faith@yna.co.kr chungwon@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