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고 입학예정인 학생들이 5일 등교해 선행학습을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
ㆍ미달 사태 위기감에 서울 20곳 이상 ‘강제 수업’
ㆍ교육청 금지규정도 무시… 학교가 사교육 부추겨
서울의 자율형 사립고인 ㅅ고등학교에 합격한 중3 김수철군(15·가명)에겐 겨울방학이 없다. 지난 3일부터 매일 오전 7시30분이면 집을 나서 등교한다. 신입생 예비학교다. 형식은 ‘자율 참여’였으나 선생님은 반드시 참석하라고 했다. 결국 이 학교 신입생 256명 중 2명을 뺀 254명이 참가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고1 국어·영어·수학 교과 과정을 미리 배운다. 특히 수학은 예비학교에서 1학년 1학기 과정을 모두 배우고, 입학하면 아예 2학기 과정부터 시작하게 된다. 예비학교에서는 진단평가도 세 차례 본다. 진단평가 점수로 SKY대(서울대·고려대·연세대) 준비반을 가려내고 해외연수자 선정에도 반영한다는 게 학교 방침이다.
올해 첫 신입생을 뽑은 자율고가 입학도 하기 전인 중3 합격생들을 학교로 불러 이른바 ‘선행학습’을 시키고 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서울의 자율고 27곳 중 적어도 20곳 이상이 이 같은 선행학습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업은 국·영·수에 집중돼 있다. 학교 측은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하지만, 사교육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돼온 선행학습 문화를 학교가 나서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사교육을 유발하는 선행학습을 뿌리뽑겠다”고 누차 강조해왔다. 지난해 말에는 0교시, 야간자율학습과 함께 선행학습을 하는 학교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자율고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 홈페이지에 버젓이 공지를 띄우고 선행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경기도교육청은 각 학교에 신입생 선행학습 금지 공문을 보냈지만 자율고와 외국어고에선 버젓이 선행학습이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 ㄱ외고는 “방학 때 수업한 내용으로 시험을 치러, 입학 후 수행평가에 이 성적을 일부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입학 전 학습 내용을 내신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사립학교의 경우 학교 평가에 크게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제어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자율고의 선행학습 열풍은 현재 자율고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 첫 신입생 모집에서 대규모 미달사태가 발생하자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신입생의 성적이 뛰어나야 다음해의 미달사태를 막고 우수한 신입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ㄷ고 교감은 “강남에 비하면 마이너리그인 강북에서 잘 가르치는 학교로 인정받으려면 이런 교육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장은숙 회장은 “입학도 안한 아이에게 수행평가, 우열반 편성, 장학금 등 고교생활에 직결되는 것들을 걸어 반강제적으로 공부를 시키는 것은 비교육적”이라고 비판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김성천 부소장도 “자율고의 선행학습은 학원에서 어느 정도 배웠다는 가정하에 속성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또 다른 사교육을 하도록 부추긴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선행학습이 2월에도 계속되면 학교의 연구사업비를 깎는 등 재정적 불이익을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미덥·이서화·정희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