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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의 이야기

초보 청년농부, 삽질하며 지구 한바퀴… 21개월 '농업 세계일주'

초보 청년농부, 삽질하며 지구 한바퀴… 21개월 '농업 세계일주'

 

유지황씨(오른쪽 두 번째)가 2015년 8월 프랑스의 질 아저씨네 사과농장에서 일을 도운 뒤 삽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오른쪽 끝은 김하석씨, 왼쪽 끝은 권두현씨. 유씨 일행은 2013년 6월부터 2015년 8월까지 12개국의 농가를 찾았다. 프랑스는 그중 10번째 나라다. 유지황씨 제공


농부는 왜 다 나이 든 사람뿐일까. 유지황(30)씨의 농업 세계일주는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한국만 그런 걸까. 청년농부는 없는 걸까. 그는 2년여 동안 후배 두 명과 함께 전 세계 12개국, 35개 농장을 누비며 답을 찾았다. 지난 7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유씨를 만났다.

그가 처음부터 무작정 해외를 찾은 건 아니었다. 4년 전 유씨는 학교 후배인 김하석(29)씨와 경남 통영에서 330㎡(100평) 크기의 밭에 파프리카 고추 등 6∼7가지 작물을 길렀다. 노는 땅을 빌려 1년 시험농사를 지어볼 심산이었다. 수확량은 다른 밭의 절반에 그쳤지만 "내년 농사는 조금 더 잘할 수 있겠다" 싶었다. 다음은 없었다. 땅 주인이 이제 본인의 땅을 써야겠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다른 청년농부는 어떤지 궁금해졌다. 농사짓는 젊은이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충남 홍성에서 풀무마을이라는 농업학교를 찾았지만 좀 더 다양한 농업 모델을 보고 싶었다. 유씨는 “청년 혼자서 농사를 시작하려고 하면 어떻게 땅을 빌리고 어떤 방식으로 시작을 해야 하나 궁금했다”고 말했다.

일본을 방문했다. 한 기업의 공모에 지원해 여비를 마련했다. 그곳은 한국과 달랐다. 청년이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5년 동안 해마다 150만엔(약 1500만원)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있었다. 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거나 농업인이어야 한다는 조건도 없었다. 결과에 대한 압박감이 없다는 점도 충격이었다. 유씨는 “일본도 인구문제를 겪으면서 마을 공동체가 무너지고 빈집 빈아파트가 생기고 있었다”며 “결국 마을에 투여될 에너지가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나름의 분석을 내놨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서 농사를 지었고, 거기서 마련한 돈으로 유럽 농촌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가장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대량생산을 위한 농업, 개발 위주의 농업을 거쳐 온 유럽은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유씨는 이 모습을 “생산자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농작물 개량·판매·유통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주체가 정부나 학자, 유통업체인 한국과는 달랐다. “농부가 돈도 좀 있고 권력도 가져야 하고 의식도 높아야 한다”고 유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한 나라의 식량을 길러낸다는 점에서 농부란 직업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유지황씨가 2015년 8월 네덜란드 아니타 아주머니의 양 농장에서 갓 태어난 새끼 양을 살펴보고 있다. 아니타 아주머니는 새끼 양 3마리의 이름을 각각 '코' '리' '아'로 지었다. 유지황씨 제공

벨기에에서 본 CSA(공동협력농업) 모델을 소개할 때는 유씨의 눈이 빛났다. CSA는 농부와 지역 소비자를 연결해 안정적인 농사 환경과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들어 주는 시스템이다. 농부는 시민단체 혹은 지자체를 통해 땅을 공급받아 작물을 키운다. 이 작물을 원하는 지역 소비자는 농부에게 1년에 35만원 정도의 선금을 지불한다. 이 돈은 좋은 먹거리를 위한 비용인 동시에 지역의 농부를 키워내는 사회적 기금이기도 하다.

100명 정도의 소비자가 선금을 모으면 1년 농사 자금이 마련된다. 작물 수확 시기에는 소비자가 농장을 찾아와 돕는다. 직접 농작물을 수확하는 경험을 제공하면서 농부의 일손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청년농부만을 위해 고안된 제도는 아니지만 청년이 활용하기에 좋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돈과 땅, 기술이 부족한 청년들에게 문을 두드릴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청년농부가 모두 꿈에 부풀어만 있는건 아니었다. 청년실업이 한국보다 심각한 이탈리아에서 어쩔 수 없이 농부가 된 젊은이도 만났다.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 테라베네 공동체에서는 젊은이들이 국가의 땅을 무단 점거해 농사를 짓고 있었다. 유씨는 “전기도 안 들어오고 물도 제대로 안 나오는 곳에서 농사를 짓고 양과 닭을 키우면서 자급자족했다”고 그들의 모습을 전했다. “이탈리아 친구들이 ‘너희도 청년문제가 심각한 걸 알고 있다. 그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우리처럼 될 수 있다’는 얘기도 했다”고도 덧붙였다.

비교적 개발이 덜된 동남아시아에서는 생태적인 삶을 경험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찾은 그린스쿨이 대표적이었다. 이곳에서 교육받고 자란 아이들은 “수십년이 지나면 유기농이 세상의 중심이 될 거예요. 왜냐하면 먹을 걸 뗄 수는 없잖아요”라고 말하곤 했다. 한국에선 만나보기 힘든 가치관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유씨는 요즘 집을 짓고 있다. 이것도 청년농부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농사를 짓다 쫓겨나도 거북이 등껍질처럼 들고 떠날 수 있도록 20㎡(6평)짜리 이동식 주택으로 만들었다. 이른바 ‘코부기’(협력·Cooperation+거북이) 프로젝트다. 농사를 시작하고자 하는 청년에게 이동식 주택을 지원하고 농장을 디자인하고 소비자와 연결하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유씨는 “농부가 입는 옷은 촌스럽다는 선입견을 바꾸기 위해 멋있는 농사 복장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서울 중구에서 만난 유씨 모습. 김지훈 기자


유씨의 농업세계일주 이야기는 최근 영화와 책으로도 나왔다. 그는 “청년농부와 농업이라는 키워드는 먹거리, 자연보호, 토종종자, 청년창업 등 함께 고민해야 할 대목이 많다”며 “제가 만났던 농장주들이 그랬듯 저도 제가 받은 영감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