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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행복한 책읽기

김영란 "토니오 크뢰거…내 영혼을 흔든 충격"

김영란 "토니오 크뢰거…내 영혼을 흔든 충격"

  • 신성헌 기자
  • 입력 : 2014.11.26 17:34 | 수정 : 2014.11.27 09:57

    김영란 전 대법관(오른쪽)과 이날 사회를 맡은 문지애 아나운서 /신성헌 기자
    김영란 전 대법관(오른쪽)과 이날 사회를 맡은 문지애 아나운서 /신성헌 기자
    “사춘기 때 나를 처음으로 강타한 책이 있다.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였다. 그 뒤로 나도 소설 속 주인공처럼 ‘세계와의 분열’로 고민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법대에 들어가고 판사가 되고 나서도 일과는 무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다. 세상을 잊기 위해 책을 읽고, 생각을 잊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퇴임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실은 내가 읽어온 책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 사건을 보는 방식, 재판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고, 그 속에 녹아있었다. 독서야말로 영혼을 흔드는 충격이자, 세상을 가장 잘 살아가게 하는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일 저녁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김영란 전 대법관이 ‘판결’이 아닌 ‘체험’을 길게 얘기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하는 ‘독(讀)한 습관’이라는 기획 강연이었다. 제목은 '나는 다른 사람이 되길 꿈꾸어 왔다'. 최고의 이력을 쌓아온 것 같은 그가 ‘다른 사람’을 꿈꿔 왔다니.

    김 전 대법관은 부산에서 나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가정법원,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을 거쳤다. 2004년에는 국내 첫 여성 대법관이 되어 2010년까지 재임했다. 대법관 때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판결로 유명했다. 2011년부터는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일명 ‘김영란법’을 입법했다. 지금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있다. 책도 냈다.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쌤앤파커스), '토크빌의 빈곤에 대하여'(에코리브르) 등이 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이어온 그의 독서 편력과 소회를 남들 앞에서 털어놓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날 강연에는 300명이 넘는 청중이 귀를 기울였다.

    행사 진행자인 문지애 아나운서의 소개에 이어 김 전 대법관이 인사말로 문을 열었다. 강연과 문답의 주요 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

    [강연] 김영란 "토니오 크뢰거…내 영혼을 흔든 충격"
    “안녕하세요. 김영란입니다. 앉아서 해도 되겠죠? 앉으면 컨닝페이퍼를 좀 볼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사실 법률과 관련된 얘기나 대학생들에게 여성 문제를 보는 시각을 얘기한 걸 제외하고는 강의를 해본 적이 없다. 이 자리는 정말 다독가들이 줄줄이 강연을 하시는 덴데, 나는 명함도 못 내밀 대단한 분들이 책 얘기들이 했더라. 보고 많이 위축이 됐다. 책에 대해 할 얘기, 내가 개인적으로 감추고 싶은 것 외에 할 얘기가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정해진 시간은 다가오고 해서 '나오는 대로 말하자' 생각했다. 1시간 동안 횡설수설하더라도 봐주시길 바란다.(웃음)

    이전 강연자들은 어린 시절 책을 어떻게 접하게 됐고, 연구할 때마다 책을 얼마나 싸들고 다니며, 자신이 활자 중독이라는 등의 얘기를 하신 것으로 안다. 사실 나도 그런 부류에 가깝긴 하다. 여행 갈 때 가장 큰 고민이, 7박8일 일정이라면 그동안 무슨 책을, 몇 권을 들고 갈까 하는 거다. 비행기에선 어떤 책을 볼까, 밤에 잠이 안 올 때 호텔 방에서는 무슨 책을 읽을까, 일주일치를 그려서 짐을 싼다. 상당히 중독에 가깝다. 중독 중에 가장 경제적인 중독이다. 다른 중독에 비해 돈이 덜 들지 않는다고 농담을 한다.

    사춘기 시절 나를 강타한 책이 있다. 바로 독일 소설가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Tonio Kröger)'다. 중편에 가까운 단편소설이다. 만의 예술가 소설이자 성장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가 어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어떻게 자라서, 그런 가정에서 어떤 갈등을 겪고 소설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얘기를 아주 아름답게 쓴 소설이다. 그의 초기 단편들은 사업을 하는 북방계 아버지와 예술적이고 감각적인 남방계 및 라틴계 어머니 사이에서 분열과 갈등을 겪는, 두 가지 기질을 가진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다. 토니오 크뢰거는 그런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토니오는 아버지 크뢰거가 영사인 좋은 집안의 학생이다. 어머니를 닮아서 검은 머리다. 토니오라고 하면 독일 북부에서는 굉장히 낯선 이름인 것 같다. 이탈리아나 라틴계로 다소 우스꽝스런 이름이다. 토니오가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름이 한스 한젠이다. 금발머리에 파란 눈에다, 공부도 잘하고, 승마도 잘하고 체격도 당당하고 체조도 한다. 다른 친구들과 승마 얘기를 하고, 춤도 잘 춘다. 데미안 식으로 얘기하면 밝은 세계에 속한 학생이었다. 토니오는 그를 너무 좋아했다. 토마스 만은 동성애자였다. 이 소설을 쓸 시기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중학생 시절 정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읽었는데, 그런 식으로 읽을 생각은 못했다. 사실 그렇게 해석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강연] 김영란 "토니오 크뢰거…내 영혼을 흔든 충격"
    푸른눈과 금발을 가진, 항상 밝은 주인공 한스는 뭐랄까, 자기의 삶과 일치된 모습이다. 인생과 자신이 일치된 것 같은 그런 삶을 사는 사람. 반면 토니오의 세계는 분열된 세계다. 검은 눈의 어머니는 남방계다. 한스의 계열은 정신이나 혼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나쁜 의미는 아니다. 토니오의 눈에 한스는 삶과 인생이 하나인 사람이다. 그는 그런 한스를 부러워했다. 나는 중학생 시절 그렇게 읽었다.

    토마스 만은 자신이 사회를 들여다보고 자신의 인생을 관찰하는 작가가 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는 저 사람들은 건너편 해안에서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나는 저 세계에 갈 수 없어"라고 생각했다.

    책에는 한스와 똑같이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잉게보르크 홀름이라는 소녀가 나온다. 토니오는 그 소녀도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그 소녀는 토니오 같은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다. 한스와 똑같이 밝은 세계에 속해있는 소녀다. 나는 중학생 시절 이걸 보면서 '나는 토니오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구나, 한스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모든 걸 그런 식으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100% 온전한 내 삶은 살지 못하겠구나' '나는 인생과 거리를 두고 바깥에서 사는구나, 그렇게 사는 인간이구나' 이렇게 분류했다.

    왜 사춘기 때 그 책을 그렇게 분류해서 읽었을까 하고 다시 (책을) 봤더니, 지금은 그렇게 읽히지 않더라. 그렇게 읽힐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실제로 토마스 만은 '아버지의 시민성과 어머니의 예술가의 기질 사이에서 자신은 예술가가 되어야 겠지만, 예술성을 가지면서 시민성도 구현할 수는 없을까'를 고민했다. 다중적인 분열이다. 나처럼 강 건너 세계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시민도 아니고 예술가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책에는 리자베타라는 화가의 얘기가 나오는데, 그가 이런 말을 한다. 온전히 ‘시민도 아니고 예술가도 아닌’.

    책 마지막에 토니오가 소설가로 성공하고 고향에 들렀다가 우연히 핀란드에 가서 한스와 잉게보르크를 만난다. 그는 그들 앞에 모습을 보이지는 않고, 멀리서 무도회가 열리는 것을 본다. 금발에 여전히 아름답고 당당한 풍채로 춤추는 것을 바라본다. 돌아와서 리자베타에게 편지를 쓰는데, 자기는 예술가의 세계에도 시민의 세계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않고, 시민성을 대변하는 글을 쓰겠다고 말한다. 여러가지 복합적으로 읽힐 수 있는 소설이다. 나는 사춘기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세상에 속하는 사람은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관찰하는 자라고 여겼다. 항상 그런 태도로 한발 떨어져서 세상을 봤다.

    [강연] 김영란 "토니오 크뢰거…내 영혼을 흔든 충격"
    오늘 강연 제목 '나는 다른 사람이 되기를 꿈꿔 왔다'도 거기서 따왔다. 토니오가 그랬다. 한스가 자기를 좋아해주길 원했다. 동시에 자신의 예술성과 창조 능력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100% 저 세계 사람으로 살고 싶지도 않지만 그들이 자기를 인정해주기를 원했다. 나도 사춘기에 그랬다. 욕심도 많고 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지기를 받아들이는 게 어려울 정도로 자존심이 강했다. 그러니까 아예 '나 자신을 세상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고 분류하고 떨어져서 관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계는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건지' '진리는 무엇인지'를 알고자 했다. 사춘기적인 발상이다. 갖지 못한 것을 노력해서 갖겠다는 것이 아니고, 줘도 안 가지겠다고 생각했다. "그 세계를 관찰하겠어. (나는) 그 세계를 보는 사람이야. 비판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다.

    사춘기 때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지금 나를 보면 많은 걸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열등감도 있고 상대적으로 못 가진 것도 있다. 1남 4녀의 셋째 딸이다. 부모님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기도 했고, 이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강했다. 지금 보면 토마스 만은 분열된 자아를 말했다기보다는 '독일인의 심성을 기본으로 깔면서 예술로 어떻게 바꿀지'를 고민했던 사람인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인다.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열등감이 내게 왜 있었는지 몰랐는데, 생각해보면 욕심이 너무 강했다. 지식욕, 지적 호기심이 굉장히 강했다. 학교 공부를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대한 걸 이해하려면 교과서보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설도 읽고 철학 에세이도 읽었다. 집에 정음사 세계문학전집, 민중서림 한국문학전집 등이 있었다. 아버지가 사다놨다. 초등학교때부터 그런 책을 읽기 시작해 중학교 때까지 계속 읽었다.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지고 싶은데 못 가진 것에 대한 욕망을 숨긴 심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세상의 근원은 무엇인가' '지혜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그것을 알기 위해 책을 빌려서 읽고 사서 읽었다. 당시 돈이 넉넉하지 않으니까 친구집에 가서 언니 오빠들의 책을 읽고, 알베르 까뮈, 프란츠 카프카의 책도 읽었다. 하지만 토니오 크뢰거만큼 충격적인 소설은 없었다. 열등감은 지식욕의 다른 표현이었다. 지식욕이 강해서, 그걸 얻지 못하면 열등감으로 표출됐다. 열등감의 정체를 몰랐고, 무엇인지 모르는 세계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사람들을 보면서도 계속 분류했다. '토니오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야, 한스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야'라고 구분했다. 나 자신은 ‘한스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면서 먼저 포기했다.

    프랑스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의 작품 중에 '흡혈귀의 비상'이라는 일종의 독서 노트가 있다. 우연히 읽게 됐는데, 본문에 '앙드레 지드에 관한 다섯 개의 열쇠'라는 것이 등장한다. 앙드레 지드에 관한 이분법이다. 세상에는 '자아주의적 가계'와 '허구주의적 가계'가 있다고 말한다. 자아주의적 가계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쓰는데 자기 세계만 쓰는 사람이다. 루소, 몽테뉴, 로버트 프로스트가 해당된다. 요리에 관한 얘기를 해도, 자기 얘기고 전쟁 얘기도 다 자기 얘기다.

    허구주의적 가계에 속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다양하게 쓴다. 발자크가 그렇다. 앙드레 지드는 자아주의적 가계에 속한 사람 같은데 사실은 좀 다르다. 구심력이 아니라 원심력으로 썼다. 자기를 잊고, 자기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쓴 사람이다.

    지난 20일 김영란 전 대법관의 강연이 열린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300명이 넘는 청중이 참석했다. /신성헌 기자
    지난 20일 김영란 전 대법관의 강연이 열린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300명이 넘는 청중이 참석했다. /신성헌 기자
    이런 식의 이분법 놀이가 다섯 가지 정도 소개된다. 책을 보다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바로 '1차적 인간, 2차적 인간'이다. 1차적 인간은 현재 젊음에 매료된 사람이다.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직관이 뛰어나고. 토니오 크뢰그에서는 한스의 세계다.

    폴 발레리와 앙드레 지드의 예를 들면 발레리는 1차적 인간이다. 차원이 낮다는 것이 아니다. 직관이 뛰어나고 세계와 자기 자신이 하나가 된다. 반대로 2차적 인간은 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한다. 현재는 흐릿하고, 자유보단 앞뒤를 따져보는 사람들이다. 지드는 발레리를 부러워하고 1차적 인간이 되고 싶어한 2차적 인간이다. 나도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을 1차적 인간으로 봤다. 2차적 인간은 뭔가 분열되고 자기의 삶을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미셸 투르니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사유한 분들이 많다.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라는 라트비아 출신 사회철학자가 있다.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로 유명하다. 전체주의와 파시즘이 유럽을 지배해서 적극적 자유를 말할 수 없을 때 소극적 자유의 중요성을 말했다. 그의 소설 중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책이 있다. 경영서로도 읽힌다. 고슴도치는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해서 파는 사람이고, 여우는 여러가지 생각을 동시에 한다. 고슴도치형에는 단테, 플라톤, 파스칼, 도스토예프스키, 헤겔 등이 있다. 반면, 톨스토이, 아리스토텔레스, 몽테뉴, 푸쉬킨, 발자크는 여우형으로 분류했다. 요즘 실용서에서는 여우형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벌린은 톨스토이를 앙드레 지드과(科)로 분류한다. 톨스토이는 고슴도치가 되고 싶었던 여우다. 그는 역사에 대해 하나의 이론적 법칙을 만들고 싶어했다. '전쟁과 평화'를 보면 역사적 배경이 길게 나오는데, 우린 사실 다 건너뛰고 읽지 않았나.(웃음) 나중에 그걸 다 읽어보니 재미있더라. 비판도 많다. 톨스토이 같은 천재가 그 부분을 잘못 썼다는 얘기도 한다. 하지만 톨스토이에게는 잘 쓰고 못 쓰고가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역사 법칙을 추구했다. 실제로 톨스토이는 여우형 인간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고, 거기에 뛰어난 소설가적 창의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전쟁과 평화’에서도 다양한 인물들을 묘사하고 설명하고 사건을 만들고 했다. 스스로 그런 인간인지 모르고 역사에 단일한 법칙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다.

    나는 내 삶과 생각과 세상이 일치되지 않고 분열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춘기도 대학 시절도 보냈다. 그러면서 법률가가 되는 것도 쉽게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내게 '판사를 그렇게 싫어하면서 그렇게 오래했느냐' '싫어하면서 그렇게 출세를 할 수 있냐'고 묻곤 한다. 이 대목에서 좀 웃어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웃음) 나보고 그래서 이율배반적이다, 얄밉다고들 한다. 그 말씀도 옳다. 하지만 나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거리를 두고 나 자신을 본다. 실제로 출세를 했든 뭘 했든 그런 것들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진정한 본질은 어디 있는 걸까 늘 생각했다. 그렇게 평생을 살았으니 그 책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겠나. 프란츠 카프카의 '성' '변신'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 이런 책들도 내게 툭툭 충격을 줬다. 하지만 어떤 책도 토니오 크뢰거만큼 큰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강연] 김영란 "토니오 크뢰거…내 영혼을 흔든 충격"
    법률가로서의 삶을 살면서, 내가 읽었던 이 책들은 나의 삶과 분리돼 있다고 생각했다. 법원에 가면 열심히 남의 사건을 연구하는 법률가, 그리고 집에 오면 전혀 다른 생활을 했다. 이중적인 삶을 산 거다. 내가 읽는 책은 거의 실용서가 없다. 물론 직업적으로 법률서는 읽지만, 굉장히 '대가가 없는' 책, 보상이 없는 책을 읽는다. 이런 강의를 할 줄은 전혀 몰랐다.

    한번은 남편(강지원 청소년인권보호법률지원단장)이 (내 독서 습관을 두고) 이상하다고 했다. ‘왜 명상을 하지 않고 책을 읽느냐’ ‘명상을 할 시간에 왜 책을 읽느냐’고 했다. 나는 '책은 항상 목적을 위해 읽어야 하나' '왜 책을 읽지 않는 시간에는 명상을 해야 하나' '책을 읽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책을 읽어서 써먹으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전공이나 생활과 상관없는 책을 읽는 이중 생활을 계속 해왔다. '무상의 책읽기' 였다. (남편이 보기에는) 이게 너무 이상했나보다. 남편의 말을 듣고는 '왜 명상을 하면서 책을 읽지 않을까' '왜 내 스스로 생각하지 않을까' '왜 남이 생각한 것을 주입할까'라는 생각들을 하면서 굉장히 부끄러워졌다. 가령 재판 연구관 시절에 연구관들과 밥을 먹는데, 법원의 미래 얘기를 하다가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 하는 김영란 재판관이 얘기를 해보게"라고 말하는데, 나는 웃으면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책을 읽기 때문에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왜 생각을 하지 않고 책을 읽을까'. 이것은 내게 풀리지 않는 문제였다. 어린왕자를 보면 괴로움을 잊기 위해 술을 계속 먹는 사람이 나온다. 나는 생각을 하지 않는 내가 괴로워서 책을 계속 읽었다.

    이번 강연에서 뭘 말할까 고민을 하다가 약간의 해답을 찾았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무상의 책 읽기. 책 읽기 자체가 명상이 아니었나. 나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나한테는 도를 닦는 것이고 명상이었다고 생각했다. 10여년 전에 남편이 던진 화두에서 한걸음 나갔다.

    나의 책읽기와 직업은 늘 분리해서 생각했다. 대법관은 대법원의 삼심 판결을 하는 자리지만, 사실 법 해석의 기준을 만드는 자리다. 입법으로 해결 안되는 분야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기도 한다. 판사는 그다지 창의적인 직업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대법관은 굉장히 창의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창의적이면 실패하는 직업'이 판사라는 말도 있다. '무슨 기준으로 판결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도 답은 없었다. 어떨 때는 소수 의견에 가담하고, 어떨 때는 다수 의견에 가담하고, 어떨 때는 판례대로 하고. 판결에는 부 판결이 있고, 전원합의 판결이 있는데, 부 판결은 기존 법원 해석에 따르고, 해석을 바꾸고 싶을 때 전원합의로 간다.

    대법관을 끝내고 나서 여기저기 강연 요청을 받는다. 대개 '판사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판사는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가’ ‘법률가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같은 주제로 강연을 해야 하니까,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을 하기 싫어서 책을 읽었는데, 할 수 없이 생각을 하게 된다.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시카고대 로스쿨 철학 교수가 쓴 책 '시적 정의(Poetic Justice)'를 보면, 법률가나 판사들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그는 '소설의 독자'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독자는 소설의 주인공이 불행을 겪든 무엇을 하든 그것과 자기를 일치화시키려고 한다. 다만 한걸음 떨어져서 '나라면 저기서 저렇게 안 했을 텐데'라고 비판적으로 본다. 그것이 판사의 위치라는 것이다.

    책에는 스티븐 브레이어(Stephen Breyer)라는 미국에서 진보파로 분류되는 대법관이 등장한다. 클린턴 대통령이 지명한 사람이다. 그는 청문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소설 '제인 에어'를 인용하면서 "거기엔 수많은 집들이 있고 그 집들의 이야기는 전부 다르다. 그 이야기, 그 문학이라는 것은 개개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이다. 판결하는 태도와 같다"고 말했다. 법률이라는 것은 획일적 진리를 찾는 것 같지만 사실 법률 속에는 개개인의 삶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절도죄를 저질러도 동기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범죄 방법이 다르다. 그런 식으로 개별성과 보편성을 다 포괄하는 것이 재판관의 관점이라고 말한다.

    나는 여지껏 무상의 책읽기를 하고, 직업과 무관한 책읽기를 하고, 세상과 나를 격리시키는 책읽기를 하고, 세상을 잊기 위해 책을 읽고, 생각을 잊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읽어온 책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 내가 사건을 보는 방식, 재판하는 방식 등 모든 것에 녹아있던 당연한 진리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스바움의 책을 읽으면서 그걸 깨닫게 됐다. 법률가로서의 삶과 독서가-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웃음)-로서의 삶이 일치되는 느낌을 판사를 그만둔 후에야 알았다. 판사 생활 중 그것이 일치되지 못하는 판결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그게 내 속에서 이런 식으로 화해를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누스바움은 '문학적 재판관'이라는 용어를 쓴다. 어떤 판사가 너무 논리적인 합일성으로 재판을 한다면 훌륭한 판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혹은 과학적 증거나 그것만 갖고 판단을 해도 안된다고 말한다. 그는 '공정한 관찰자'라는 애담 스미스의 말을 인용해 개별성과 독자의 관점을 이야기한다. 소설을 읽는 독자와도 같다. 주인공과 일치하는 것 같지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말하는 사람, 그렇게 하면 안되는데 하고 안타까움을 가지면서 생각하는 관찰자, 그것이 공정한 관찰자다. 누스바움은 이것이 이상적인 재판관인 것처럼 말한다.

    오늘 강연 주제가 '독(讀)한 습관'이다. 나 자신을 앙드레 지드처럼 1차적으로 살고 싶었던 2차적 인간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책을 읽으라고 시키지 않았다. 책을 읽는 것이 대단한 충격이고, 인생을 너무 좌우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사람이 살면서 책에서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토니오 크뢰거는 내 인생의 첫번째 충격을 준 책이었다. 아이들이 그런 충격을 어디서 어떻게 받을지 모르는 것이다. "음악에서, 책에서 받아라" 하고 정해주고 싶지 않더라. 충격이라는 것이 다양하겠지만, 미적 감각이나 마음 속에 있는 근원적 자아에 대한 충격이라고 생각한다. 영혼을 뒤흔드는 충격 같은 것이다. 그 충격은 소중하고 정말 고유하고 억지로 남이 시킨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한번 경험하면 잊을 수 없다. 이런 것을 세상 어디서 얻게 되느냐. 물론 다양한 충격이 있겠지만, 영혼의 밑바닥을 뒤흔든다는 것이 독서 체험에서 가장 쉽게 얻을 수 있고, 가장 확률적으로도 높다.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충격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도 없다. 절대로 그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경험이다.

    이런 것을 몇 번씩 경험해서 자기 인생을 풍부하게 해야 한다. 이건 남에게 설명이 잘 안 되는 경험이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경험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대한 이분법 놀이를 또 해보자면, 경험해본 사람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경험해본 사람은 거기서 다른 책을 읽으면서 발전시키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다. 세상 무엇보다도 독서가 가장 잘 사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독한 습관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하는 중요한 삶의 방식이다. 딱 한 시간을 채운 것 같다. 괜찮았나?(박수) 이런 강연이 처음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굉장히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나가면서 싹 잊어달라.(박수) 감사합니다.

    [강연] 김영란 "토니오 크뢰거…내 영혼을 흔든 충격"
    <문답>

    -사회자: 김 교수는 학생들을 만날 때도 전문 분야 강의를 주로 하고 대외 활동이나 언론 접촉도 자제하는 것으로 안다. 책읽기라는 주제의 강연이 부담이 됐을 텐데 오늘은 이렇게 강연한 계기가 무언지 궁금하다.

    “책이라는 것은 내 인생에서 정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한 달 몇 권인지는 안 세웠지만 거의 매일 읽는다. 왜 읽고 어떻게 읽는지 정리해보자는 생각으로 강연을 수락했다.”

    -사회자: 말씀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 중 하나가 ‘나는 학교 공부를 공부로 생각하지 않았다’였다.(웃음) 공부를 의무감으로 생각하지 않고 소설, 철학서, 에세이를 읽는 것이 세상에 필요한 공부라고 여겼다는 대목이다. 사실 우리는 부모님이나 선생님께서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를 강조하는 것을 들으며 자랐다. 책읽기에 대해 윤리적인 의무감이 든다. 하지 않는 데 대한 죄책감, 해야 하지만 못한 것에 대한 마음의 무거움. 어린 시절 언니나 오빠, 부모님들로부터 책 읽으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들어보지 않았다. 나는 만화책도 열심히 읽었다. 만화가게에서 한 질로 빌려와서 온가족이 읽었다. 우리 아이들이 만화책을 빌려오면 같이 읽었다. 감명 깊은 만화도 있다. '노다메 칸타빌레'가 그랬다. 아이들도 이건 엄마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만화라며 빌려온다. '20세기 소년' '몬스터' 등등.”(웃음)

    -사회자: 정말 의외다. 책을 많이 보는 분들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독한 습관’ 첫 강연자였던 안미나 배우는 '어떻게 책을 이렇게 가까이 접하게 됐냐'는 질문에 어린 시절부터 만화책을 읽었다고 했다. 만화책을 다 읽고 나니 더 이상 읽을 게 없어서 책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자녀에게는 책 읽으라고 부담 준 적이 없나?

    “없다. 오히려 내가 책을 너무 많이 읽는 게 아이들에게 부담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건 엄마의 습관일 뿐이라고 말했다.(웃음) 열심히 읽는 아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다. 아이들에게 좋은 책, 전집 이런 걸 추천하지 않았다. 자녀들과 서점에 가면 내 책은 내가 고르고, 아이들 책은 아이들이 고르도록 했다. 만화책을 사든, 뭐 최불암 시리즈를 산 적도 있다. 그냥 사줬다. 아이들이 책 고르는 수준이 점점 올라가더라. 책이 늘 가까이 있으면 읽게 된다. 부모가 안 읽으면서 아이들에게 읽으라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나는 너무 다독하는데 그 습관이 안 좋은 것 같아서, 엄마 식으로 읽으라는 말을 절대 못하겠더라. 그냥 내버려뒀다.”

    -사회자: 아이들이 너무 만화책만 본다거나, 내가 보기에 수준 높은 책을 읽지 않거나, 책을 너무 안 읽을 때 불안함은 없었나?

    “숙영낭자전 만화책을 예로 들면, 거기에는 숙영낭자와는 아무 상관없는 유머로 만화를 그려놨더라. 아이들의 흥미를 끌어야 하니까. 속으로 '어떻게 책을 이렇게 만들어' 하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에게 내색은 안 했다. 그걸로 아이들이 숙영낭자전을 알게 되고, 나중에 진짜 숙영낭자전을 읽게 되면 된다.”

    -사회자: 아직 책 읽기에 즐거움을 찾지 못한 사람에게 책과 친해지기 위한 방법으로 뭘 권하고 싶나.

    “너무 어려운 책을 읽으면 안 된다. 글자가 커도 좋고 이야기가 짧아도 좋고. 의문이 생기면 그 의미를 설명해주는 복잡한 책으로 넘어가고. 그런 식으로 단계적인 것을 거쳐야 한다. 수능 논술 문제에 미국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이 출제되는데, 두 페이지로 요약된 것도 있더라. 그런 경우에는 요약본 많이 읽는 것보다는 정의론 한 권 읽는 것이 낫다고 본다. 그런 책을 직접 읽는 게 수능 문제집 100권 푸는 것보다 낫다. 하지만 내 방식대로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웃음)

    -사회자: 꽤 큰 조카 아이가 책을 제법 많이 읽는다. 어른들이 읽는 책을 읽는데, 어머니들은 읽는 것 자체에 굉장히 만족한다. 아이가 흥미를 느끼고 이해하는지 엄마들은 모를 텐데.

    “자기가 이해하는 것보다 조금 더 쉬운 책을 읽는 것이 좋다고 본다. 책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게 좋다. 흔히 독후감 쓰는 습관을 보면 요약을 시킨다. 하지만 나는 '네 느낌이 무엇이냐' 하고 묻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본다.”

    -스무살 대학생이다. 나도 교수님이 말한 ‘2차적 인간’이라는 생각을 사춘기 때부터 해왔다.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 2~3년간 우울한 상태로 지내오고 있다.(웃음) 교수님은 그런 강박이나 열등감에서 어떻게 벗어났나?

    “2차적 인간 입장에서 보면 1차적 인간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주인공인 것처럼 희희낙락하고 산다. '저 사람들은 왜 저리 잘 살까'라는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었다. 책에 답이 있기도 없기도 하지만 내 나름대로 찾기 위해 많이 읽었다. 그것이 내게는 책을 읽는 원동력이 됐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에서 벗어났다.”

    -강단에 서고 있다. 김 전 대법관은 인간 본질에 대한 굉장히 어려운 책들을 읽는 것 같다. 그런 책을 읽을 때 한발도 못 나갈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나?

    “한발짝도 못 나갈 때는 그냥 접고 놔둔다. 몇 달이 지나서 처음부터 읽기도 한다. 그러다 읽지 않은 책도 많다. 의무로 읽을 생각은 안한다. 언젠가 생각이 나면 다시 꺼내 읽는다. 나중에 읽는 것도 많다. 강박적인 책읽기는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초등생 딸과 왔는데 만화책을 읽히는 게 좋다고 하니 되게 좋아한다.(웃음) 다독을 자랑하는 사람이 많다. 책을 고르기가 어려워, 결국 처세술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수준보다 낮은 책을 보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책이 책을 낳는다. 일간지의 책 소개를 열심히 읽는다. 스크랩을 하고 메모를 한다. 나는 아직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라 책방에 가서 책을 본다. 어떤 때는 책을 너무 많이 사서 그 자리에서 배송을 부치고 오기도 한다. 어느 책을 읽다가 어떤 주제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검색하거나 해설을 찾아서 보는 식이다. 투자를 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독서 분야가 있나. 가장 최근에 읽는 책과 느낀 점도 알려달라.

    “감동받은 책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다. 모차르트, 테오도르 아도르노 등 여러 철학, 음악, 예술가들의 '말년의 양식'에 주목했다. 생을 관조하는 식이 아니라 말년의 욕망, 복잡한 감정과 양식을 소개한다. '정말 왜 이런 작품을 말년에 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재미있게 풀어냈다. 젊은 분들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는데 50대 예술에 관심이 많은 분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