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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의 핵심은 ‘말발’ 아닌 ‘논제 학습’

토론의 핵심은 ‘말발’ 아닌 ‘논제 학습’

등록 :2016-09-05 20:02수정 :2016-09-05 20:10

교내 토론대회 준비법

학종 대세 속 교내 토론대회 주목
‘말하기’ 앞서 ‘글쓰기’ 중요성 알아둬야

논제 놓고 신뢰가는 자료 찾으며
반론 뭐 나올까 모의토론 해보고
‘기술’ 아닌 ‘논제 탐색’ 공부임을 명심
지난해 9월12일에 열린 부산교육청 주최 ’다같이 독서토론리그’ 예선인 2차 리그전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성도고(왼쪽)와 부산진고 학생들의 모습이다. 강현숙 교사 제공
지난해 9월12일에 열린 부산교육청 주최 ’다같이 독서토론리그’ 예선인 2차 리그전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성도고(왼쪽)와 부산진고 학생들의 모습이다. 강현숙 교사 제공
“우승 노하우요? 솔직히 참신한 방법은 없어요. 3명이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했어요. 조사한 근거자료를 실제 토론에서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지식으로 만들 때까지요. 자신감은 준비를 철저히 할 때 나와요. 자신감이 생겨야 실제 토론에서 잘 생각나고 잘하게 되니까.”

교내 토론대회 우승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부산진고 3학년 방성우군의 답변이다. 방군은 지난해 부산교육청에서 주최한 ‘다같이 독서토론리그’에 부산진고 독서토론동아리 ‘웅비아고라’팀으로 출전해 최종 우승했고, 교내 토론대회에서도 새로운 친구와 팀을 꾸려 1등을 했다. 두 대회 최우수 토론자로도 뽑혔다. 놀라운 건 방군도, 함께 우승한 토론동아리 친구들 대부분도 지난해 처음 토론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2학기 교내대회 준비를 계획하는 학생이 많다. 토론대회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빠지지 않는 교내행사. 대입 학생부종합전형 확대로 학생부 비교과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일부 교육특구에서는 고액의 컨설팅도 등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토론대회는 사교육 없이도 충분히 대비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이 꼽는 토론대회 노하우를 정리해봤다.

입론서 작성을 위해 조사한 근거자료를 놓고 토론하고 있는 부산진고 독서토론동아리 ’웅비아고라’ 학생들 모습. 강현숙 교사 제공
입론서 작성을 위해 조사한 근거자료를 놓고 토론하고 있는 부산진고 독서토론동아리 ’웅비아고라’ 학생들 모습. 강현숙 교사 제공
■ 대회 요강 꼼꼼히 살펴 일정 짜는 게 첫 단추

교내 토론대회 준비의 첫 단추는 모집요강부터 꼼꼼히 살피는 것이다. 한국디베이트협회 전민자 회장은 “대회 진행 방식과 세부 일정, 주제나 팀 구성 방식 등이 학교별로 제각각인데 다 요강에 나와 있다”며 “특히 토론 방식에 따라 용어와 진행 방식이 다 달라 룰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수”라고 했다. 기존 고전적인 토론 방식이 아니라 각 학교 상황에 맞게 변형한 케이스도 많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사전 오리엔테이션에 반드시 참석해 대회 담당 교사에게 확인하고, 어렵다면 토론 동영상을 찾아보는 게 좋다.

대회는 입론서(개요서) 제출→서류심사→예선→본선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토론은 크게 찬반팀 입론→반론/교차질의→최종변론 순서로 진행되고, 대결 방식은 원탁토론, 토너먼트, 리그전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 대결 방식에 따라 대회 기간이 천차만별이라 다른 행사나 시험 기간과는 겹치지 않는지도 반드시 체크할 부분이다.

팀은 보통 2인1조나 3인1조가 대부분이다. 다만 구성원의 학급, 학년 제한을 두는 곳도 있다. 규정에 맞는 범위 안에서 토론대회에 의욕이 있고 자료조사·토론연습을 충실히 할 ‘책임감 있는 친구들’과 팀을 구성하는 게 좋다.

■ 논리적 말하기 이전 ‘글쓰기’가 평가요소

흔히 토론대회는 ‘말하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토론장에 들어설 수 있는 1차 관문은 서류심사다. 논리적 말하기 이전에 논리적 글쓰기가 우선 평가요소인 셈이다. 전문가들이 “입론서 작성에 가장 공들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입론서는 ‘용어 정의’, 어떤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이 논제를 다뤄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상황배경 설명’, 3가지 ‘쟁점’과 각각의 찬반 ‘근거’, ‘결론’ 순서로 작성하면 된다. 이때 아이들이 많이 하는 실수가 제시된 논제의 찬반 이유부터 무턱대고 찾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입론서 작성에 앞서 논제분석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전 회장은 “논제분석을 제대로 해야 쟁점을 도출하고 입론서에 선명하게 부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논제분석이란, 해당 논제에서 찬성과 반대가 갈리고 충돌하는 쟁점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파악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성범죄자 신상공개제도 폐지해야 한다’가 논제라면, 폐지를 주장하는 쪽은 범죄자의 이중처벌 문제와 범죄자 자신이 아닌 가족들이 피해를 받는 인권침해를 이유로 든다. 반면 유지 쪽은 미성년자 성범죄의 특수성, 범죄자의 인권보다 공익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이런 경우 형평성의 문제와 인권침해 요소가 주요 쟁점이 된다.

논제분석을 통해 정리한 쟁점은 가장 중요한 것부터 입론서 앞쪽에 배치한다. 지난해 ‘다같이 독서토론리그’ 최종우승팀 부산진고 토론동아리 강현숙 지도교사는 “어떤 주장이 가장 적합하고 의미있는 주장인지 팀원 간 토론을 통해 정리하는 게 효과적이었다”고 했다.

또한 강 교사는 “교내 토론대회 서류심사에서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일단 충실도”라며 “충실도란 ‘좋은 자료’, ‘다양한 자료’를 찾아 성실히 작성한 입론서를 말한다. 그다음이 깊이와 논리성”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에서 쉽게 긁을 수 있는 자료보다는 관련 도서나 기관의 누리집, 신문기사, 논문 등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팀원들이 함께 근거 자료를 조사해서 더 적합하고 신뢰할 수 있는 근거 사례를 선별해 채워 넣는다. 상대 팀이 반박하기 힘든 자료일수록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범죄 관련 주제라면 경찰청, 성범죄의 경우 여성가족부, 원자력발전은 국토교통부나 에너지관리공단 등을 우선 들어가 본다. 국가 행정과 관련한 다양한 통계와 보고서를 찾는다면 통계청도 유용하다.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인 빅카인즈(www.bigkinds.or.kr)도 활용하기 좋다. 철학과 같은 어려운 논제는 유튜브에서 관련 강의를 찾아보면 도움이 된다.

지난해 열린 부산교육청 주최 ’다같이 독서토론리그’에서 최종 우승한 뒤 부산진고 독서토론동아리 ’웅비아고라’ 학생들이 단체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강현숙 교사 제공
지난해 열린 부산교육청 주최 ’다같이 독서토론리그’에서 최종 우승한 뒤 부산진고 독서토론동아리 ’웅비아고라’ 학생들이 단체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강현숙 교사 제공
■ 입론서 수정·보완하며 논제 심화학습 해야

서류심사를 통과했다면, 대회날까지 입론서를 계속 수정·보완하면서 모의토론을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스피치는 연습을 통해 충분히 길러질 수 있으며, 특히 대회는 ‘말발’이 아니라 논제에 대한 학습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입론서 수정이란 주장을 뒷받침할 더 나은 근거를 찾는 과정이다.

심사위원이 볼 때 참가자의 실력은 대부분 ‘반론’과 ‘교차질의’ 과정에서 드러난다. 이는 참가자의 배경지식과 순발력을 뜻한다. 공부를 얼마나 했느냐,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의 문제다. 상대 팀은 스피치 스킬에 불복하는 게 아니라 반박할 논리가 없을 때 막힌다.

토론대회 수상자들은 모두 “찬성과 반대 팀으로 나눠 모의토론을 반복해 토론연습을 했다”고 했다. 찬반팀을 돌아가며 서로 입론, 반론, 교차질의를 해보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예상 질문을 만들고 하나하나 반박 근거를 다듬었다. 최근 교내 토론대회에서 은상을 받은 고양시 일산 중산고 1학년 이수영군은 “상대 팀이 반박하기 힘든 가장 확실한 근거는 법조항이나 통계자료”라고 전했다. 논리성이 약한 주장은 관련 교과 선생님의 조언을 참고로 보강했다.

토론연습에서 토론자들이 많이 접해보지 않아 어려워하는 부분이 ‘반론’이다. 강 교사는 ‘반론은 상대 팀 발언을 정리해 인용하고, 그 말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내 주장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찬성팀에 대한 반론이면 ‘찬성 쪽이 케이블카 설치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돈은 벌 수 있지만 환경이 훼손된다/ 그래서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안 된다’ 식으로 연습하면 된다. 주장을 3개 정도 나눠 얘기하면 2~3분짜리 반론이 된다.

반론과 교차질의 과정에서 내가 던진 질문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자신있게 답변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럴 때는 분위기가 상대 팀에 유리하게 넘어가지 않도록 중간에 흐름을 끊어주는 연습도 필요하다. 단, 반드시 정중하게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또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야 한다.

토론의 마무리인 ‘최종변론’은 양쪽 주장이 팽팽한 경우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마지막 카드다. 전 회장은 “토론 전반부가 논리적 설득 위주라면, 최종변론에서는 논리적 설득을 종합해 감성적 터치로 설득하는 단계”라며 “맨 앞이나 뒤에 활용 가능한 속담이나 예화, 일화, 실제 사건 등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재를 몇 개 준비해 놓는 게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은애 <함께하는 교육> 기자 dmsdo@hanedui.com

토론할 때 필요한 태도는?

- 지나치게 공격적인 말투는 피한다.

- 전체 흐름과 상관없는 말꼬리 잡기는 하지 않는다.

- 문장은 최대한 짧게 줄여서 말한다.

- 너무 빠르게 말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 상대 발언을 전략적으로 끊을 때는 최대한 정중하게 한다.

- 지나치게 어렵고 현학적인 어휘는 남발하지 않는다.

- 토론에 정답은 없으며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