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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독자에서 작가로...학교도서관에서 벌어진 일

독자에서 작가로...학교도서관에서 벌어진 일

[사서교사의 하루 ⑥] 글을 들고 온 소연이와 함께

16.08.19 15:59l최종 업데이트 16.08.19 15:59l 황왕용(vielerfolg)

학교도서관을 운영하다 보면 글쓰기 대회, 토론대회 등 공문이나 홍보물이 적지 않게 온다. 올해 5월이었나? 여기저기서 온 글쓰기 대회 홍보물을 도서관 한쪽에 부착하였다. 그리고 도서관에 오는 학생들에게 한 번 안내하는 자리도 있었다.

아이들은 교외 대회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관심이 적은 이유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고, 교외대회는 생활기록부에 입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금을 안내했더니 몇몇 학생이 관심을 보였다.

"선생님, 언제까지 어디로 내면 돼요?"

보통 상금을 안내했을 때 묻는 친구들은 거의 일정 안에 내지 못한다. 소연(가명)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무 말도 없이 듣고, 인사만 남긴 채 도서관 문을 나섰다. 관심을 보였던 친구들은 저마다 상금 쓰임을 의논하며 재잘거렸다.

"야, 너 상금 받으면 뭐할 거야?"
"음... 여행 가고 싶어. 넌?"
"태블릿 사고 싶어."

김칫국을 마시고 있는 학생들에게 일갈했다.

"글부터 쓰시고 이야기하시지요? 그리고 상금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뭐든 먼저 열심히 하고 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거야. 그러니까 상금 이야기는 그만!"

그래도 아이들 표정을 보니 저마다 상금을 생각하고 있었다. 짧은 교직 경력이지만 보통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나눈 친구들은 글의 분량을 채우려고만 해 글이 어설프다. 그래도 글을 내는 친구들은 글을 쓴 것만으로 좋은 경험이 된다. 기대만 가득했다가 아예 글을 쓰지 않는 친구들도 많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마감 일주일 전, 소연이가 찾아왔다. A4 용지 2장을 들고 내 앞에 섰다.

"선생님. 지난번에 알려주신 거 써봤는데 제가 읽어봐도 글이 이상한 것 같아요. 한번 봐주세요."

학생들에게 대회를 공지하면서 일주일 전까지 가지고 오면 함께 읽어보고 부족한 부분이나 잘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했다. 아무 말 없이 나갔던 소연이가 혼자 글을 가지고 왔다.

소연이 말처럼 소연이의 글이 무얼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우유가 싫었다가 좋아졌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 신문기사 이야기를 끌어오기도 했고, 중국 여행 이야기가 툭 튀어나오고, 엄마의 잔소리가 흘러나왔다.

글을 통해 전달하려고 하는 핵심내용은 있으나 간결하고 의미 있게 표현해내고 있지 못했다. 마치 김치와 돼지고기는 있으나 너무 많은 부재료들을 넣어 끓여 김치찌개 본연의 맛을 살리지 못한 것처럼.

그럼에도 소연이가 글을 써왔다는 것, 그리고 선생님을 찾아와 함께 읽어보자고 한 것이 기특했다.

"소연아, 글을 쓰려고 하는 마음도 좋고, 기본적인 생각도 참 좋다."
"네?"

말이 별로 없던 소연이는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사실 선생님도 글을 잘 몰라. 보면 볼수록 어렵고, 쓰면 쓸수록 글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서."

한 템포 쉬고 말을 이었다.

"선생님은 소연이 글을 보고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아. 그런데 소연이 친구들이 이 글을 읽으면 알 수 있을까? 글은 읽는 이가 내 마음을 알 수 있도록 써야 하거든. 그런데 이 글은 너무 이리저리 통통 튀는 고무공 같아. 그리고 분량에 맞춰 쓰려다 보니 글의 통일성을 깨뜨리는 문단이 많네. 우리 같이 하나씩 읽으면서 살펴볼까?"

6월 어느 점심시간에 소연이와 30분 동안 글을 들여다봤다.

"소연아 이 부분은 생략하는 건 어떨까?"
"왜요?"
"앞 문장과 뒷 문장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해서."
"음... 그럼 매끄럽게 연결을 해볼게요."
"그래. 그럼 너의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보는 것도 좋겠다."

띄어쓰기나 비문을 지적하고, 내용상 문제를 위의 대화처럼 풀어나갔다. 소연이가 받아들이는 것은 소연이가 수정하기로 했고, 소연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은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두 번의 점심시간을 함께 보냈고, 소연이가 표현하려는 내용을 비교적 잘 담아냈다.

마감일에 제출한 학생들 작품과 함께 갈무리해서 메일로 제출했다. 그리고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에 핸드폰이 부르르 떨렸다. 핸드폰의 패턴을 풀고 문자를 확인했다. 소연이었다. 동상을 받았다는 소식과 감사하다는 인사말이었다. 잔잔한 감동이었다. 상을 타서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받은 느낌이었다.

사실 소연이의 글을 함께 읽었을 때, 내 고집대로 했다면 더 큰 상도 받았을지도 모른다. 내 착각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하지 못했다. 상금과 상장의 훈격을 높일 수는 있지만, 학생의 마음과 글 솜씨는 떨어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교도서관에서는 학생들을 독자의 위치에서 글을 쓰는 작가의 위치까지 경험하게 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능동적인 독자로서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글은 아니어도 삶을 담아내는 글을 쓸 수 있는 그런 학생이 한 명이라도 늘어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