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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나요!

쿡가대표 요리사들, 뉴욕에서 세계를 노크하다

쿡가대표 요리사들, 뉴욕에서 세계를 노크하다


셰프 어벤저스의 KoreaNYC 디너
뉴욕에 한식을 선보인 ‘코리아NYC 디너’의 다섯 셰프들. 왼쪽부터 강민구, 임정식, 최현석, 유현수, 장진모.
11일 저녁 뉴욕 맨해튼 트라이베카의 모던한 한식 레스토랑, 정식(JUNGSIK). 미쉐린 가이드의 별 둘이 반짝이는 이곳 테이블에 첫 접시가 놓이자 곳곳에서 대화의 데시벨이 올라갔다. 이날 있었던 한 갈라디너의 어뮤즈 부시로 바삭바삭한 메뚜기 튀김이 나와서다. 금빛, 혹은 붉은 빛이나 다갈색 빛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은 “메뚜기를 먹어야 하나 정말 고민되네요. 그런데 안 먹을 수가 없어요”, “굉장히 바삭거리는 식감이군요. 처음 먹지만 플레이팅이 굉장히 아름다워서 거부감이 없어요”라는 평을 남겼다.

곤충이 몇몇 문화권에서 식재료가 되는 것이 동서고금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다음 세대의 미래 식량원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런 상황을 의식하기라도 한 듯, 진취적인 뉴요커들은 눈 앞에 놓인 새로운 식재료를 거부하는 ‘촌스러운’ 일을 벌레 먹기보다 더 꺼렸던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 있었던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파악한 정황과 참석자들이 남긴 SNS 게시물을 종합해 재구성해보면, 이 갈라디너는 메뚜기 이후로는 차라리 잠잠. 그러나 한국의 식재료를 이용한 창의적인 요리가 진지하게 이어질 때마다 서양요리의 익숙한 겉모양 속에 숨겨진 새로운 풍미, 그리고 낯선 조합의 맛이 또 다른 결의 반향을 일으켰다.

 

셋째 날 갈라디너가 열린 정식 홀 전경.

전 세계에 모던 한식을 알리다

이런 풍경은 9일과 10일 양일에 걸쳐 브루클린의 블랑카(Blanca)와 맨해튼의 블루힐(Blue Hill)에서도 펼쳐졌다. 각각 미쉐린 가이드의 별 둘, 하나를 가진 쟁쟁한 레스토랑이다. ‘코리아NYC 디너(KoreaNYC Dinners)’가 지난 9일부터 11일에 걸쳐 뉴욕에서 열렸다. 서울에서 활동 중인 스타 셰프 다섯이 뉴욕에서 한국 음식의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자 출정한 행사다. 9일에는 블랑카에서 장진모(앤드 다이닝), 최현석(엘본 더 테이블) 셰프가, 10일에는 블루힐에서 강민구(밍글스), 유현수(이십사절기) 셰프가 각각 카를로 미라치(Carlo Mirarchi), 댄 바버(Dan Barber) 셰프와 협업해 디너를 선보였다. 11일에는 최현석, 임정식(정식당, 정식), 장진모, 강민구 유현수 셰프가 열 개의 손을 합쳐 하나의 코스를 낸 갈라 디너가 펼쳐졌다.
유현수 셰프가 선보인 동충하초 채소죽.임정식 셰프의 고추장 뵈르블랑 소스 문어 요리. 사진 Matty Yangwoo Kim 제공
‘모던 한식 쇼케이스’로서 성과가 좋았다. 현장에서는 물론 이후 SNS 등에서도 대체로 ‘신선했다’, ‘좋았다’ ‘기대 이상이었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캐주얼한 한식 레시피를 가득 담은 ‘코리아타운 쿡북(Koreatown Cookbook)’을 펴낸 아시아통(通) 음식 칼럼니스트 맷 로드바드(Matt Rodbard)에게 물었다. “코스에 나온 모든 요리가 개성 있고 창조적인 동시에 한식의 기본 양념인 된장과 고추장, 간장을 잘 이해하고 활용해 한국의 전통적인 맛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는 게 그의 평가. “세계적 수준으로 부상 중인 모던 한식을 대표하는 다섯 요리사가 준비한 이번 행사는 미국에서의 한식의 위상에 획기적인 영향을 주리라 본다. 주로 일본 식당 등 다른 나라 음식 문화의 그늘 아래서 일해온 한국 요리사들이 앞으로 더 조명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던 한식이 어느 단계까지 와 있는지 전 세계에 충분히 과시할 수 있었던 무대다. 단지 지구 한 구석, 뉴욕이라는 한 도시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전 세계’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이 일련의 일들이 일어난 시발(始發), 그리고 시기와 관련 깊다.
성게로 만든 두부에 해초를 곁들여 다채로운 맛과 질감을 낸 장진모 셰프의 요리.
‘월드50베스트레스토랑(World’s 50 Best Restaurants, 이하 W50B)’이라는 행사가 있다. 2002년 첫 선을 보인 W50B는 전 세계 곳곳의 900여명 푸디(Foodie)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순위를 매긴 세계 레스토랑 순위, 혹은 그것을 발표하는 행사다. 밍글스(15위), 정식당(22위), 신라호텔 라연(50위)이 올해 순위권에 든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Asia’s 50 Best Restaurants)’이 바로 이 W50B의 아시아 번외편이다. W50B는 고작 15회에 불과한 어린 랭킹이지만, 미식계에서는 116년 역사를 가진 ‘미쉐린 가이드’ 못지 않은 영향력을 갖는다. 보수적이기보다는 유연하고, 전통적이기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진보적인 성향으로 차별화된다. 코리아NYC 디너는 13일 저녁 있었던 W50B 본 행사에 앞선 사전 부대 행사였다. 시작은 W50B 측이 한국의 음식 전문잡지 ‘라망(la main)’에 제안한 데서부터였다. ‘라망’은 국내 대중에게 인지도는 낮지만, 그간 수 차례의 해외 미식 행사 취재를 통해 W50B와 긴밀한 네트워크를 유지해온 매체다. 코리아NYC 디너는 양측의 합동 주최 형태로 진행됐다.
울릉도에서 난 다양한 나물과 버섯으로 속을 채운 만두와 그 자투리 채소를 사용한 육수가 곁들여진 강민구 셰프의 울릉 만두.
푸아그라와 리코타 치즈를 김으로 감싸 튀겨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게 얼린 간장 소스 위에 올린 최현석 셰프의 요리.
강민구 셰프는 갈라디너를 마친 다음날인 12일 W50B의 사전 컨퍼런스인 '50 베스트 토크(50 Best Talks)'에서 한국의 채소 발효 음식을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W50B의 에디터 윌리엄 드류(William Drew)는 "장 문화를 기반으로 한 한국식 채식 발효는 전 세계 셰프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며 "이번 컨퍼런스는 한식과 한국 요리사들의 경쟁력 재평가가 이뤄지는 계기이며, 전 세계가 한식에 주목하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갈라디너 첫 날 뉴욕 브루클린의 레스토랑 블랑카에서 최현석 장진모 셰프의 모던 한식을 경험 중인 뉴요커들.
엇갈린 열망, 한식세계화라는 트라우마

이쯤에서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과거의 망령을 돌아보게 된다. ‘한식 세계화’다. 한식이 세계 곳곳에 뻗어나가 사랑 받는다는 것은 나쁠 일이 전혀 아니다. 하지만 한 때 ‘로맨틱한 버섯’ 같은 이도 저도 아닌 홍보 문구 등으로 의아함과 비웃음을 불러일으키며 말 자체가 비호감 이미지를 뒤집어 써버렸다. 의아하기로 치면 얼마 전 화제에 오른 한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가장 먹기 어려웠던 한국 음식’을 조사했더니 65%가 게장을 꼽았다는 것이다. 설문에 참여한 한 외국인 관광객은 “심하게 짠 데다가 냄새까지 나서 먹기 어려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잘 만든 간장게장은 짜기보다는 간간하고, 온갖 부재료의 향이 달큼한 게 살결 사이사이에 녹아들어 향기롭다. 불쾌한 냄새는 결코 간장의 잘못이 아니다. 앞서 세계화된 일식을 통해 간장 특유의 향은 전 세계에 이미 학습돼 있다. 십중팔구 재료가 좋지 않았던 탓일 테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맛과 질을 포기한 대가다.

관광객 전용 식당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잠시 잊더라도, 한식을 영위하는 우리의 식생활부터가 파괴돼 있다는 통렬한 결론은 외면할 수 없다. 음식에 대한 정의는 결국은 정확한 맛이다. 원래 그 음식이 가진 정확한 맛은 우리의 평균적인 식생활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간 집안 사정을 돌보지 않은 채 바깥 손님만 불러온 셈이다. 들어오려는 객들은 점점 늘고 있지만 망령도 여전히 골목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더 새로운 재료를 찾기 위해 울릉도의 산과 바다를 두루 탐험한 셰프들.더 새로운 재료를 찾기 위해 울릉도의 산과 바다를 두루 탐험한 셰프들.
이제야 풀리기 시작한 실마리


코리아NYC 디너는 아닌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발효와 한식이 주목 받는 시기에 젊은 요리사들이 풀어내는 현대적인 한식을 전 세계에 소개할 좋은 기회였다. 다섯 요리사들은 3개월의 준비 기간 동안 발로 뛰고 밤을 지새가며 그들이 정의하는 한식에 대한 답을 찾아냈다. 왕후장상의 만한전석을 찾아 다니지 않았다. 모두가 결국 음식이다. 파인 다이닝, 모던 한식이라 해서 재료나 조리법의 기초가 다를 것은 없다.
전라남도 내장산 백양사의 비구니 암자 천진암에서 정관스님에게 채소 과외를 받는 강민구 셰프.
그들은 울릉도 수풀을 헤집고 다니는가 하면, 강화 오일장의 좌전을 다 뒤져 동시대엔 거의 잊힌 야생 재료를 재발굴하기도 하고, 내장산에 파묻힌 암자 천진암에 들락거리며 사찰식 채소 장아찌들을 배워오기도 했다. 좋은 기회가 왔고, 기회를 져버리지 않은 노력만큼 성과도 얻어냈다. 행사 직전 가장 많은 트래픽이 발생하는 시기, W50B의 각종 SNS 채널과 홈페이지를 통해 5일간의 일거수일투족이 전해지며 관심 없던 이들의 눈길 끌기에도 성공했고, 전 세계에 점점이 퍼져 있는 한식 팬들도 분명히 응답했다.
서일농원을 찾아 서분례 청국장 명인에게 청국장을 배우는 셰프들의 모습.경기음식연구원 박종숙 음식연구가로부터 어육장에 대해 배우는 셰프들의 모습.
현실적으로 이 한 번의 교신이 성사됐다고 해서 당장 드라마가 펼쳐지지는 않는다. 급할 수록 빨리 지친다. 이미 겪어본 일이다. 13일 저녁 발표된 W50B 2016 리스트에서는 50위권은 물론 100위권 내에도 한국 레스토랑 이름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A50B와 W50B의 격차는 크고, 벽은 높다. 한식은 아직까지는 우리만의 잔치다. 몇몇 호기심 많은 부지런한 손님들이 먼저 와있을 뿐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그저 우리부터 성의껏 차려 잘 먹고, 오는 손님 잘 먹여 보내는 것밖에는 없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제공 라망


“한식 세계화, 시간 문제다”
19일 오후 뉴욕 맨해튼 트라이베카의 한식 레스토랑 정식에서 열린 코리아NYC 디너 기자 간담회 모습
9일 뉴욕에서 열린 기자 코리아NYC 디너 간담회에는 뉴욕타임스, NBC, CNN등 주요 매체와 맷 로드바드 등 다국적 칼럼니스트들, 요리사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플레이버 바이블(Flavor Bible)’의 저자 캐런 페이지(Karen Page) 등이 초대됐다.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뉴욕 거주 프리랜스 칼럼니스트 홍수경이 정리한 내용을 추렸다. 질문의 눈높이가 한식에 대해 전혀 모르는 기자부터 잘 아는 기자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것이 한식의 위치를 암시하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되는 점이 흥미롭다.

_이번 행사에 대한 소감은.

장진모= 여러 요리사들과 함께 하는 동안 음식, 생각, 마음을 교환할 수 있었고 나 자신의 음식이나 서비스에 대한 인식 또한 재고할 수 있는 계기였다.

유현수=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을 표방하는 블루 힐의 댄 바버 셰프가 식재료를 대하는 모습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었다.

_코리아NYC 디너의 음식은 이전에 소개된 한국 음식들과 어떻게 다른가.

임정식= 뉴욕의 한국 식당 음식은 소스와 페이스트 위주다. 이번 디너에서는 한국음식이 가진 바삭함 이외에도 김치의 아삭거림 등 다양한 식감을 소개한다.

강민구= 김치와 비빔밥, 고추장, ‘코리안 바비큐’ 너머의 한국의 맛을 보여주려 한다. 이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한국의 음식 명인들로부터 배운 것들이 앞으로 나의 요리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_감칠맛은 요즘 뉴욕 미식계에서 뜨거운 주제다. 일본의 감칠맛이 조명되는 분위기인데 한국의 감칠맛은 어떻게 다른가.

강민구= 한국의 감칠맛은 식물성 작물을 발효시켜 얻은 것을 주로 사용한다. 바로 된장, 간장 등 장이다. 일본의 감칠맛은 가츠오부시와 다시마를 좀더 많이 이용한다.

_현재 한국의 음식 문화는 어떤 상황인가?

최현석= 셰프들이 화제가 되면서 지망생이 늘고, 셰프에 대한 관심이 다이닝 경험으로 이어지는 추세다.

강민구= 이전에는 젊은 요리사가 레스토랑을 이끄는 것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았는데, 해외에서 경험을 쌓은 요리사들의 활약을 통해 인식이 바뀌게 됐다.

_프라이드 치킨과 코리안 비비큐를 넘어, 외국에서 한국 음식이 더 깊숙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봤나.

임정식=한식은 점점 확장되는 단계에 있다. 오로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 라망(la main)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