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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

1억4000만년간 그려온 풍경화

1억4000만년간 그려온 풍경화

황금빛 일몰·몽환적 물안개…태고의 신비 간직한 '창녕 우포늪'

 

지는 해 아래로 1억 4000만년의 세월을 지내온 우포늪이 붉게 물든다.

 

어스름 새벽의 목포늪은 원시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낸다.
창녕은 한반도가 생길 때부터 우리 땅에 함께했던 거대하고도 신비한 공간을 품은 고장이다. 바로 우포늪이다. 우포늪은 ‘살아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최대 자연 늪지로, 탄생 시기는 1억40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룡시대였던 중생대 백악기에 해수면이 급격히 상승하고 낙동강 유역 지반이 내려앉으면서 늪이 생성됐고, 이후 긴 시간을 창녕 땅에서 잠들어 있었다. 한때 급격한 산업화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습지로 인정받으며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 됐다.

목포늪의 명물인 징검다리.

늪과 수많은 동식물이 펼쳐내는 생태의 향연으로 언제 찾아도 아름다운 우포늪이지만, 특히 이곳의 일출과 일몰은 백미로 꼽힌다. 때묻지 않은 대자연이 붉게 물드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우포늪은 가로 2.5㎞, 세로 1.6㎞ 크기로 창녕군 유어·이방·대합면 3곳에 걸쳐 있다. 늪 주변은 제방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 제방길이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일출명소인 목포제방에서 바라본 목포늪 모습.

 


이 중 좀더 접근하기 쉬운 곳은 일몰명소인 대대제방이다. 창녕군 유어면 우포늪생태관에서 출발해 걸어서 10여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우포늪’은 원래 우포늪(소벌)과 함께 인근 목포늪(나무벌), 사지포늪(보래벌), 쪽지벌을 모두 아우르는 명칭이다.

대대제방은 이 가운데 가장 큰 늪인 우포늪을 내려다보고 있다. 우포늪은 소의 형상을 한 인근 우항산이 이곳 물을 마시는 형세를 하고 있어 붙여졌다. 네 개의 늪 중 가장 큰 만큼 제일 평온하고 포근하다. 눈앞에 부드럽게 펼쳐진 거대한 늪지와 그 위를 정중동(靜中動)으로 흘러가는 물길이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그 대자연 위에 거대한 해가 내려앉는다. 세상이 붉게 물드는 순간이다. 뜨거운 해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1억4000만살 먹은 늪은 무슨 생각을 할까. 기껏 몇십년 살아온 인간의 머리로는 알 수 없는 세계를 바라보며 경외감과 감탄만 하게 되는 시간이다.

지는 해 아래로 1억4000만년의 세월을 지내온 우포늪이 붉게 물든다. 걷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보는 이를 숙연하게 만드는 장관이다.

해가 진 뒤 더욱 고요해진 우포길을 따라 돌아오다 보면 알 수 없는 새와 동물들 소리가 선명히 들린다. 우포늪이 거대한 생태박물관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공간에 삶을 의탁하는 동식물은 수백종에 이른다.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황새, 잿빛개구리매 등 희귀한 새들도 둥지를 트는 곳이다. 멸종위기종인 따오기 복원계획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우포늪 내 복원센터에서 어린 따오기들이 잘 자라고 있다고 하는데, 2017년이면 야생에 방사된다고 한다. 앞으로 2년 후에는 이곳에서 ‘따옥따옥’ 하는 정겨운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포늪은 일몰과 함께 일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우포늪의 일몰이 평온함과 고요함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면, 일출은 원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은 목포늪에 위치한 목포제방이다.

 

원래는 우포늪생태관에서 출발해 20여분 걸으면 갈 수 있지만 지금은 길이 통제됐다. 그래서 먼길을 돌아가야 한다. 자동차로 30분여분 달려 이방면 옥천리로 가야 목포제방에 도달한다. 목포늪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깊은 산중에 자리 잡고 있다. 목포늪은 시야가 탁 트인 우포늪과는 달리 늪지 여기저기에 수많은 나무가 자라며 독특한 풍광을 자아낸다. 봄과 가을에는 큰 일교차로 생긴 물안개가 신비스런 분위기를 더한다.

운이 좋은 날은 장대거룻배를 타고 다니며 그물로 고기를 잡는 어부들도 만날 수 있다. 몇몇 어부들에게만 제한적으로 고기잡이가 허용되는데, 어스름 새벽녘 고깃배를 타고 고요한 늪지를 떠다니는 이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아쉽게도 우포늪의 일출을 보기 위해 찾은 날은 구름이 잔뜩 끼어 최고의 장관을 감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구름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해의 붉은 기운 만으로도 이곳 일출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최고의 일출을 보기 위해 이곳을 다시 찾겠노라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다.


창녕=글·사진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여행정보(지역번호=053)

우포늪에 가려면 중부내륙고속도로 창녕나들목에서 나와 ‘우포늪, 합천 방면’으로 우회전해야 한다. 계속 직진하면 우포늪생태관 입구에 도착한다. 고속버스는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창녕행이 1일 5회 왕복운행하며 4시간20분이 걸린다. 이후 창녕시외버스터미널 인근 군내버스 정류소에서 우포늪생태관행 버스를 탈 수 있다. 화왕산은 창녕나들목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창녕읍으로 가면 된다. 창녕여중 인근으로 자하곡매표소가 있다. 창녕은 창녕읍 지역보다 부곡면에 좋은 숙소가 많다. 1980년대 국내 최고 온천관광지대로 명성을 날렸던 곳으로 로얄관광호텔(536-7300), 부곡하와이관광호텔(536-6331), 부곡스파디움 따오기호텔(530-3000), 레인보우호텔(521-9777‘) 등이 있다. 케이모텔(521-0177), DW모텔(536-5555) 등도 평이 좋은 편이다. 창녕의 맛집으로는 창녕읍에서 부곡온천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리원( 536-6555)이 유명하다. 가마솥밥이 인기 메뉴다. 민물고기찜과 논고동국으로 유명한 우포늪식당(532-8649)과 전통식 청국장을 맛볼 수 있는 양반청국장(533-0066)도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