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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래는?

우리는 못하는 건설현장의 ‘적정 임금’

우리는 못하는 건설현장의 ‘적정 임금’

 

 
요즘 청년 일자리 부족 문제가 사회적 관심이죠.

이같은 문제를 다룬 <최악의 청년 실업률, 일자리는 왜 사라졌을까?>라는 칼럼이 KBS 뉴스 홈페이지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일종의 보충편으로 저는 미국의 예를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몇 년전 취재차 미국 뉴욕의 경찰서 신축 건설현장을 찾았습니다.

공사장 출입구에 아래 사진과 같은 ‘Prevailing wage'(적정 임금) 라는 일종의 노임 단가표가 붙어있더군요.





목수의 시간당 노임은 $44, 배관공은 $50 등으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만약 건설사가 이 임금을 주지 않을 경우 주정부에 신고하라고 전화번호도 적혀 있더군요. 미국의 모든 공공 건설현장 입구에는 이같은 Prevailing wage라는 적정임금 단가표를 의무적으로 붙여놓게 돼있습니다.

공사판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느 나라든 마지막 노동시장입니다. 힘없고 빽없고, 배운 것도 많지 않은 건설 노동자들은 임금을 착취 당하기 쉽죠.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인간 본성은 똑같은데 미국 사장님이라고 그런 마음 없겠나요?

그래서 미국 정부는 Prevailing wage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적정한 임금을 강제로 정해버렸습니다.

법으로 임금을 규제하지 않으면 노동자 임금이 형편없이 내려가 생활이 안될테고 그러다 보면 누가 공사판에서 일하려 하겠습니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인데.. 물론 Prevailing wage 적용을 받는 건설현장은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공공 건설사업만 해당됩니다. 민간 건설분야까지 정부가 임금을 강제할 순 없겠죠.

그러나 공공 건설의 노임이 민간 건설 노동자의 노임을 이끌어가면서 미국 건설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아래 표에서 보듯이 교사, 경찰관 등과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충분히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아파트 짓고, 도로와 다리를 건설하는 공사 현장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힘들고 지저분하고, 또 까딱하면 떨어져 죽기쉽고 팔다리 잘려나가기 쉽기 때문에 누구나 이런 일 하기 싫어합니다.

미국 사회는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이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임금을 주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를 보았고, 한국 사회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대체하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 결과 한국인 건설 인력들은 대부분 현장을 떠났습니다. 중국인, 베트남인들과 어떻게 임금 경쟁이 될 수 있겠습니까?

미국에 Prevailing wage 제도가 생긴건 1930년대초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입니다. 당시 대공항으로 ‘뉴딜’ 사업이 진행됐고, 넘쳐나는 실직자들이 건설현장으로 몰리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착취되지 않는 방안으로 데이비스와 베이컨 두 의원이 제안한 법안이 토대가 됐습니다.



이후 8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사회에서 Prevailing wage는 배운 것 없고, 물려받은 것 없더라도 열심히 일하면 땀 흘린만큼 댓가를 받을 수 있다는 사회 정의를 세워주고 있습니다.

물론 전미 건설사 협회에선 지금도 이 제도를 국가가 민간 기업의 임금을 강제하는 악법이라며 폐기를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 정부의 입장은 최소한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공공 건설사업만큼은 국민의 이익이 철저하게 반영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정부의 기능이라는 입장입니다.

서유럽 사회는 미국보다 훨씬 더 많은 분야를 정부가 임금을 통제하고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땀 흘린만큼 댓가를 받을 수 있다는 노동 정의를 국가가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에 서구 사회의 아이들이 훨씬 더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낸다는 주장도 매우 설득력 있습니다. 공부에 흥미가 없어도 그래서 좋은 대학을 못가도 열심히 일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서구사회는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사회는 좋은 대학을 못가면 넥타이 매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중국인, 베트남인들과 임금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사실을 학부모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공부에 흥미가 있든 없든 무조건 공부에 목을 매야하는 이윱니다.



마지막으로 2010년 우리 정부는 건설시장에서 한국판 적정임금 제도를 도입하겠다며 기재부와 노동부, 국토부 관리들이 미국 노동부와 건설현장 등을 방문 조사해 1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적정임금 보장 도입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도입은 무산됐습니다.

이 제도를 국내에 들여오는데 대해서 대형 건설사들의 반대가 너무 심하다는 이유였습니다.

홍사훈기자 ( aristo@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