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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

학생부에 적으면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학생부에 적으면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한겨레

안연근 교사의 대입 나침반

학년이 바뀌는 현재 고 1, 2학년 담임교사들은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를 본격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 때 교육부에서 제시한 ‘학생부 기재요령’을 잘 숙지하고 작성해야 한다. ‘이런 활동까지 기록을 금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연극 동아리를 지도한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연극연습을 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동아리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연극부원들이 연습을 하면서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이를 학생부에 기록하고 싶었다. 그러나 수상 실적은 물론, 대회에 참가한 사실조차도 기록할 수 없다. ‘학생부 기재 금지 사항’(<표> 참고) 1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유적탐방, 문학기행, 우리 문화 및 세계 문화 이해 체험, 국토순례, 자연탐사, 직업체험 등 다양한 주제별 활동도 개인 또는 그룹으로 했다면 2번에 해당해 학생부에 기록할 수 없다. 특정 대학 진로캠프, 겨울캠프, 대학 강좌, 전공 체험 등에 참여한 내용도 3번에 해당해 기록할 수 없다.

대입전형 서류 간소화 정책으로 대부분의 대학은 학생의 ‘개인 활동기록’(개인 포트폴리오)을 받지 않는다. 이에 따라 대학은 학생을 평가할 때 학생부 기록 내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학의 입학사정관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지나치게 제한된 학생부 기록으로 인해 수험생 개개인의 역량을 평가할 수 없다고 갑갑해한다. 교사의 관심과 각 학교의 교육과정에 따라 학생부 기록 내용에 차이가 있어, 수험생 개인의 역량이 아닌 고교의 역량이 평가될 수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학생 개개인의 잠재능력과 교육적 환경, 진로 목표에 대한 열정과 이를 성취하려 노력한 과정 등을 고려해 학생을 선발하자는 것이 ‘학생부종합전형’의 취지이다. 만약 결과 위주의 교과 성적으로, 학생이 속한 고교의 위상으로 평가를 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이 올바르게 정착되려면, 주요 평가요소인 학생부에서 개인이 의미 있게 활동한 자료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교육과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은 집단 활동이어서 개인의 역량을 차별화하기가 쉽지 않다.

학생들이 진로 목표를 세워 꿈과 끼를 살리는 활동을 독려하자는 게 현재 교육부의 방침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꿈과 끼를 고교 내 교육과정으로만 충족할 수는 없다. 이 한계를 대학에서 메워줄 수가 있다. ‘공교육 정상화 기여 대학 지원 사업’ 일환으로 각 대학에서 추진 중인 ‘고교-대학 연계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된다. 무료로 실시하는 이런 프로그램들은 사교육비와 관련이 없다. 대학 소재지와 거리가 먼 곳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체험에 제한이 있겠지만, 대학 쪽에서 기숙사를 제공한다면 교육 소외 지역에 있는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다.

물론 각종 공인어학시험, 각종 교과목 경시(외부)대회, 논문(학회지) 등재 및 도서 출간, 발명 특허, 해외봉사 등은 학생부에 기록할 수 없게 해야 한다. 사교육비, 스펙 조작, 부모나 타인의 도움 가능성 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유료로 학생을 모집하는 각종 프로그램 참여 활동 기록도 제한해야 한다. 그러나 사교육비와 무관하고 학생 본인의 열정이 묻어난 활동들 가령, 공적기관 주관의 동아리대회·유적탐방·국토순례, 대학 주관의 전공체험 활동 등은 개인 또는 그룹으로 참여했을지라도 인정해주는 것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학생부 항목 중 ‘독서활동상황’은 폐지했으면 좋겠다. 현재 ‘독서활동상황’은 책을 읽은 당사자인 학생이 아니라, 담임교사가 일일이 작성한다. 타인이 읽은 책의 느낌을 제3자가 기록하려니 참 곤혹스럽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책을 읽은 뒤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담임교사가 알아서 기록해야 하는 고충이 크다.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서라면 학생 본인이 기록할 수 있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활용하면 된다. <끝>

안연근 잠실여고 교사, 서울진학지도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