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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신경 끄고 공부나 하라고요? 교과서 밖 정치공부 해봐요

“신경 끄고 공부나 하라고요? 교과서 밖 정치공부 해봐요”
한겨레 문현숙 기자기자블로그
 

 

지난 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전국청소년정치외교연합 소속 학생들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최화진 기자

[함께하는 교육] 참여권 주장하고 나선 청소년들

청소년은 세계 인구의 약 30%를 차지한다. 청소년을 흔히 ‘미래를 이끌어 갈 주역’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현재 사회의 일’에는 신경을 끄라고 한다. 오히려 본인의 의견을 분명히 밝히는 청소년에게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라거나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말이 돌아오기 일쑤다. 청소년을 현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고 당당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이 있다.

신문 보며 시사이슈 토론하고
거리서 정치상식퀴즈대회 등 열어
선거권·교칙 등 바꿔야 한다며
당당하게 정치 참여하는 청소년들
사회 바라보는 비판적 안목 생겨

길거리에서 ‘정치무관심’ 깨기 캠페인 벌여

전국청소년정치외교연합(Youth Union of Politics and Diplomacy·이하 유패드)은 전국의 고교생이 모여서 꾸린 비영리단체다. 2009년 만들어졌고, 현재 50여개 고교 3400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신문 기사를 읽고 토론도 하고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길거리 캠페인에도 나서는 등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 시사 감수성도 기르고 정치에 무관심한 일반인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환기시키려고 하는 활동이다.

평소 회원들은 단체 인터넷카페(cafe.naver.com/yupad)에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주제의 기사를 스크랩하고 기사에 대한 논평을 각자 써서 올린다. 이상빈(공주사대부고 1)군은 “예전에는 인터넷으로 관심 가는 뉴스만 검색해 봤다. 지금은 학교로 신문을 신청해서 매일 읽는다”며 “관심있게 봤던 이슈에 대한 논란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살펴보지 못하면 마치 쭉 봐왔던 연재만화가 갑자기 중단된 것처럼 재미가 없다. 처음 봤던 뉴스거리가 어떻게 진행 중인지, 달라진 게 있는지 내용이 궁금해서 계속 찾아본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유패드 학생들은 서울 청계광장과 광화문, 석촌호수 등에서 거리 캠페인을 벌였다. 정치상식퀴즈대회, 정치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도 하고 담뱃값 인상, 공무원연금 개편안 등 최근 사회적 이슈를 소개하는 활동도 했다. 특히 청계광장에서 진행한 정치상식퀴즈대회는 시민들의 호응이 좋았다. ‘총선에서 행사할 수 있는 투표수’, ‘선거의 4대 원칙’, ‘대통령과 국회의원, 국회의장의 임기를 합하면?’ 등의 문제가 출제됐다.

5살, 9살 두 아들을 데리고 산책 나온 김종연(서울 강남구 개포동)씨는 한참 동안 서서 퀴즈를 풀었다. 그는 “학교 다닐 때는 알았던 정치 상식 용어들이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까먹은 게 많다. 이런 기회를 통해 뜻이 뭔지 되새기고 아이들한테도 그 뜻을 알려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부인, 손자와 함께 캠페인을 지켜보던 이아무개(71)씨도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는데 정작 정치인들은 자기네 이익만 챙기려고 서로 다투며 바보짓만 한다. 학생들이 저렇게 나서서 정치에 대한 올바른 관심을 끌어내려고 하니 보기 좋다”고 말했다.

유패드 회장을 맡고 있는 성현(한일고 2)군은 “청소년들에게 ‘정치’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를 물어보면 ‘비리’나 ‘부정부패’ 등의 단어를 많이 떠올린다. 청소년들은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도 두려워한다. 이런 인식이 무관심으로 이어진다”며 “사회의 일원인 청소년이 정치적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내고 상식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립중랑청소년수련관 특성화동아리 ‘청정언’(청소년 정책참여 선언) 학생들이 직접 작성해 만든 정책참여 선언문. 서울시립중랑청소년수련관 제공

또래강사로 나서 “선거권 연령 낮추자” 주장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하거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본적인 참여권을 행사하는 수단은 투표다. 현재 우리나라는 만 19살이 넘어야만 선거권이 주어진다. 즉, 청소년들은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인천 검단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이하 청운위) 학생 20여명은 지난 4월부터 ‘날아올라! 청소년들!’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선거권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이들은 또래강사로 나서 지역사회 청소년 120명을 대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했다. 청소년 권익 개선과 정치참여 활동 유도에 관한 내용이었다. 김영서(인천디자인고 2)양은 “뉴스에서는 주로 사고 치고 말썽 부리는 ‘비행청소년’ 이야기만 다룬다. 하지만 바른 생각을 품고 사회를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친구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강의에서 정치에 좀더 관심을 갖고 우리 의견을 내는 게 중요하며 이를 위해 청소년에게도 선거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얘기했다.” 또래강사들은 강의를 위해 인천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을 초청해 교육을 받고 자료를 찾아 직접 교재도 만들었다.

또 지역 번화가에서 선거권 연령을 낮추자는 주장에 대한 서명도 받고 설문조사도 했다. 200명이 넘는 이들이 참여했다. 김양은 “어른들이 많이 동의해줬다. 너희가 먼저 바뀌어야 사회가 바뀐다고 얘기한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백석고 2학년 민혜림양은 “정치는 우리 삶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특히 교육 정책의 직접적 수혜자는 학생인데 어른들끼리 결정하고 무조건 따르라고만 한다”며 “선거권이 주어지면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인 정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직접 정책제안서 써서 구청에 민원 넣어

사실 입시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이 사회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나이만 먹는다고 갑자기 누구나 ‘성숙한 시민’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과 수업은 물론 학교생활 속에서부터 자연스레 정치참여의 기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교칙 하나 학생의 손으로 바꿀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시립중랑청소년수련관 특성화동아리 ‘청정언’(청소년 정책참여 선언) 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이 묵살됐던 경험에 공감하며 직접 정책제안서를 작성했다. 지난 15일 오전, 수련관 빈 강의실에 모인 친구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동복 교복을 입을 때 반드시 조끼와 재킷까지 다 갖춰 입고 나서 패딩점퍼를 입으라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패딩점퍼를 뺏긴다.”

“하지만 그렇게 겹쳐 입으면 오히려 몸이 둔해져 활동하기 불편하다. 학교 밖에서는 그렇게 입더라도 교내에서는 자유롭게 입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학교는 심지어 패딩 색깔도 남색·회색 등 어두운 색깔로 정해져 있다. 학교 측은 학생 본분을 지키고 통일성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과연 그런지 의문이다. 패딩을 새로 사야 해서 부담스러워하는 애들도 있다.”

학생들은 실제 동복 교복에 대한 교칙을 고치기 위해 학생회와 대의원회를 통해 대안까지 마련해 학교에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해도 결과는 대부분 도로 ‘원점’이었다.

이들은 교복 착용에 대해 본인들의 의견을 반영한 정책제안서를 썼다. 그밖에 시험을 줄이고 학생들이 직업체험을 할 기회를 의무적으로 늘려달라는 의견, 방과후 활동 프로그램 운영 때 사전에 학생 선호도 조사를 반드시 거치게 해달라는 의견 등이 나왔다. 이들은 이 내용을 정리해 구청 누리집 ‘구청장에게 바란다’ 게시판에 의견을 올릴 계획이다.

서울 혜원여고 1학년 이경은양은 “청소년의 권리가 무엇인지 토론한 적이 있다. 나이가 어리다고 어른한테 푸대접받았던 게 생각났다”며 “우리 스스로 권리의식을 갖고 나서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사회를 무감각하게 봤는데 지금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생겼다”고 말했다.

중앙대 최윤진 교수(사회복지학부 청소년전공)는 “청소년을 생존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참여와 변화를 이끌어낼 주역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한마디로 ‘비커밍’(becoming)이 아닌 실제 오늘의 사회를 살아낼 ‘빙’(being)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는 ‘학교 자체가 작은 사회’라고 했다. 학교는 학생들이 작은 사회의 시민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장이 돼야 한다. 교육과정 내에서뿐만 아니라 지역 기관과 연계해 직접 정치활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2002년 19살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국회의원이 됐던 안나 뤼어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식사 때마다 가족들과 정치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매일 갈등이 첨예한 사회 이슈부터 정치적 논쟁까지 다양한 주제가 식탁에 ‘올라왔다’. 특히 뤼어만은 녹색당, 아버지는 사회민주당 등 그의 가족 네명 모두 지지하는 정당이 달랐다.

뤼어만은 가족과 때론 부딪히며 상대를 설득하거나 자신과 다른 입장을 이해하면서 자연스레 정치사회화 과정을 겪었다. 그리고 청소년에게 일찍부터 정치참여를 허락한 독일에서 자란 덕분에 15살에 녹색당에 가입해 활동했다. 한국과 독일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정치인 뤼어만이 했던 말은 한국의 청소년들을 향한 말이기도 하다.

“불평만 하지 말고 행동하라.”(Machen statt meckern)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