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 당신이 그렇게 만든건 아닐까…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 당신이 그렇게 만든건 아닐까…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지나친 자식 사랑도 '毒']

"아직 아이같아서…" 40代 아들 집 청소해주는 70代 부모

-12세인데 소변 못가리는 아이

엄마가 매일 아이 데리고 자… 옷 입혀주고 응석 다 받아줘 와

-회사 적응 못하고 그만둔 청년

"우리 아이 잘 부탁드린다"며 아빠가 수습때 회사에 꽃 보내

과잉보호 익숙해진 부모들… 자녀 自立 막고있는 셈


서울 동작구에 사는 박모(여·44)씨는 지난 주말 강원도에 아빠와 캠핑을 가려고 집을 나서는 아들 기수(12)를 배웅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집에 돌아온 박씨는 방한용 목도리를 챙겨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다시 아들 얼굴을 떠올렸다. 기수는 키 150㎝에 몸무게 38㎏인 건강한 아이다. 공부는 반에서 상위권이고 운동도 곧잘 해서 친구들 사이에선 꽤 인기가 있는 편이다.

하지만 기수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지금도 1주일에 1~2차례씩 이부자리에 오줌을 싼다. 아침에 일어나 스스로 옷 입을 생각을 안 해 엄마가 항상 옷을 입혀 학교에 보낸다. 그래도 엄마는 아들이 집을 하루라도 떠나는 날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이가 사랑스럽다고 했다. 박씨는 지난 주말 스마트폰 속의 아들 사진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나이에 맞지 않게 오줌을 제대로 못 가리고 어리광을 부리는 데는 아직도 아이를 옆에 끼고 자는 엄마 탓도 있는 것 같다고 아빠 김모(49)씨는 말했다. 엄마 박씨 역시 아들이 또래보다 응석이 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박씨는 아동심리학 박사다. 박씨는 "아들이 저러는 데는 내 탓이 크고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도 옳지 않다는 걸 안다"면서도 "하지만 배운 대로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자식이 너무 사랑스러운 부모, 그래서 자녀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주거나 방임하는 부모가 자립 능력이 없는 아이를 만들고 있다. 아이를 품 안의 자식으로 여기고 끼고만 도는 부모의 지극한 사랑이 때로는 독(毒)이 된다는 것이다.

서울대 곽금주 교수는 "부모가 모든 것을 대신 해주는 아이들은 자립 능력이 약해 작은 외부 자극에도 불안 심리가 커지고, 매사에 고마움을 모르고 불만만 커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부모의 지극한 자식 사랑은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된다.

문제는 이런 부모·자식 간 사랑이 자녀로 하여금 '정신적 이유기(離乳期)'를 놓치게 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아이처럼 부모의 일방적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게 만든다는 점이다.

40대 아들집 청소해주는 부모

초등학교 교사로 퇴직한 정모(73)씨는 매주 수요일이면 경기도 성남 분당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 사는 아들네 집으로 간다.

맞벌이 부부로 사는 외아들(40)의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 날에 맞춰 집 청소를 해주려는 것이다. 집 청소를 마치고 밀린 빨래까지 세탁기에 돌려 널고 나면 2~3시간이 금세 흐른다. 가끔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쓰레기 분리 수거장에서 만난 이웃 아주머니들이 "어르신 며느리는 참 좋겠어요"라는 인사말을 건넬 땐 흐뭇해진다. 정씨는 "아들 내외한테 고맙단 소리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지만 자식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으니 된 거 아니오"라고 했다.

지난해 9월 울산광역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20년간 근무해온 교사 A씨는 이 학교에 다니는 자기 딸의 내신 등급을 높이기 위해 중간고사 수학 성적을 조작했다가 결국 법정에 섰다. A씨는 교무실에서 교사들에게 공지된 학생들의 성적 현황을 보자 곧바로 딸의 성적에 눈이 갔다. 수학 점수를 조금만 높이면 내신 등급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동료 교사 B씨를 설득해 아이의 답안지를 바꿔치기해 성적을 높였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부모들은 불법 행위조차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란 생각으로 합리화한다"고 했다.

방임하다 뒤늦게 개입하는 부모도 문제

자녀에게 자기 뜻을 강요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규율 없이 아이를 방임하는 부모, 그리고 뒤늦게 아이 인생에 개입하는 이른바 '물친(규율 없이 방임하던 물 같은 부모)의 돌변'도 아이에게 독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주변에서 '자수성가'했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40대 사업가 정모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주말이면 아들과 축구하거나 캠핑을 가며 '친구 같은 아빠'로서 역할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중학생이 된 아들은 "이제 성적에도 신경을 쓰라"는 정씨의 말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김래선 상담원은 "정씨는 나름 '열린 아빠'라고 생각해왔지만, 정작 아들은 아빠를 주말에 놀아주는 '놀이 상대'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다"며 "아이가 어릴 때 아이와의 갈등을 조정하는 일은 엄마가 도맡아 왔기 때문에 아이는 뒤늦은 아빠의 개입에 거부감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교육 컨설팅 등을 전문으로 하는 유웨이중앙교육 유영산 대표는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한 아버지 가운데 이런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정신적 이유기' 놓친 독자(獨子) 세대

출산율이 1.19명인 우리 사회의 '독자' 세대가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문제는 자녀를 과잉보호해온 부모들 역시 자녀의 부모 의존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중견 기업 간부는 "한 수습사원 아버지가 회사로 꽃바구니를 들고 와 '혼자 자라 사회를 잘 모른다'며 아이를 잘 부탁한다고 하는데 어린아이를 캠프에 보낸 아버지 같았다"며 "해당 사원은 결국 일이 힘들다며 얼마 안 돼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소수연 박사는 "자식을 애지중지하며 키워온 요즘 부모들이 정작 자녀의 자립 능력을 키우는 데는 소홀한 대가를 치르는 셈"이라고 했다.

[최경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