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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1년간 인생설계 돕는 학교 아세요?

1년간 인생설계 돕는 학교 아세요?
한겨레 문현숙 기자기자블로그
 

 

지난 10월31일부터 11월2일까지 열린 ‘덴마크 교육의 핵심 에프테르스콜레 교사 초청 세미나’에서 에프테르스콜레 가운데 한 학교인 ‘라이스뷔’의 교감 알렉스 마손이 나와 자신의 학교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삶을위한교사대학 제공

‘에프테르스콜레’ 세미나

2013년 유엔 행복지수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덴마크. 덴마크 학생들은 초등교육과정(1학년~10학년으로 우리나라의 초등 6년~고교 1년에 해당)을 마치기 전, 자신이 다니던 공립학교와는 다른 학교를 선택할 기회를 얻는다. 학교 이름은 ‘에프테르스콜레’(영어로는 애프터스쿨)다. 일반 공립학교에서 공통으로 가르치는 기본 교과목뿐 아니라 학생의 관심사와 앞으로의 인생행로, 즉 삶의 진로와 관련된 특정 분야를 심화해 배울 수 있는 학교다. 정부는 에프테르스콜레 재학 기간을 공립학교 재학 기간과 동일하게 인정해준다. 그래서 공교육은 물론이고 대안교육 진영에서도 매우 특별한 사례로 손꼽힌다.

현재 덴마크에는 약 250곳의 에프테르스콜레가 있다. 매 학년 25%의 학생들이 상급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에프테르스콜레에 다닌다. 외국어부터 음악·미술·연극·영화·스포츠·국제교류 등 학교별로 중점을 두는 부분은 다 다르다.

“시간표를 살펴볼까요? 7시30분에서 8시 사이에 아침을 먹습니다. 그리고 8시부터 8시30분 사이에는 모여서 뉴스를 봅니다. 한 사회 시민으로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함께 만납니다.”

지난 1일 오전 9시30분. 서울 하자센터에서는 에프테르스콜레 가운데 한 학교인 ‘라이스뷔’의 교감 알렉스 마손이 나와 자신의 학교 사례를 소개했다. 올해로 설립 20돌을 맞는 라이스뷔는 ‘국제정치’ 분야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학생들은 덴마크어·수학 등 일반 교과목도 기본으로 배우지만 국제사회·정치·문화 등과 관련한 다양한 방식의 심화 수업에도 참여한다. 매년 덴마크 정치인들은 이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을 만나고 정치 이슈를 놓고 공개토론회 등도 연다.

10월31일부터 11월2일까지 열린 ‘덴마크 교육의 핵심 에프테르스콜레 교사 초청 세미나’(대안교육연대, 삶을위한교사대학, 하자센터 공동주최)에서는 이 라이스뷔 학교 말고도 ‘삶에 대한 학습’에 중점을 둔 ‘뤼슬링에’, 스포츠 중심의 ‘삼쇠’ 등 다른 에프테르스콜레 교사와 교장 등도 나와 학교 사례를 소개했다.

덴마크 1학년~10학년 사이
자유롭게 선택 가능한 사립학교
현재 약 250곳 운영 중
일반교과에 학교별 특화교육 하나씩
공동체 시민의식 등 중시
정부가 학비 일부 지원도

에프테르스콜레는 덴마크의 시인이자 교육사상가, 정치가인 그룬트비의 철학을 기초로 세운 학교다. 그룬트비는 ‘학교는 형식적인 직업훈련보다는 삶의 계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철학을 덴마크 사회 비전으로 제시했고, 1844년에 이 이념에 기초한 최초의 시민대학이 설립됐다. 그 뒤 1851년 크리스텐 콜이 그룬트비의 사상을 기초로 최초의 에프테르스콜레를 세웠다.

1년 단위로 교육과정을 진행하는 에프테르스콜레 학생 수는 학교마다 최소 25명에서 500명까지 다양하다. 기숙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는 대부분의 일상을 함께하며 다양한 배움을 나눈다. 마손 교사는 “에프테르스콜레에서 교사는 교사일 뿐 아니라 심리학자, 사회복지사인 동시에 학생들의 친구”라고 소개했다.

모든 에프테르스콜레가 공유하는 핵심 가치도 있다. ‘일반교육’, ‘삶의 계몽’, ‘민주시민’이라는 가치다. 삶을위한교사대학 송순재 이사장(감리교신학대 기독교교육학과 교수)은 “이 가치들은 공교육에서 실시하는 일반 교과를 공통으로 가르치되, 덴마크 사회 평민으로서 스스로를 자각(계몽)하고, 생활인으로 살아가며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람을 기르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송 이사장은 에프테르스콜레를 ‘평민을 기르는 학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학생 개개인에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능력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개인적 관심사에 초점을 둔 학교와는 차이가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 탐색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자유학기제를 떠올릴 수 있지만, 자신의 관심 분야를 탐색하는 걸 넘어 1년 동안 깊고 넓게 공부한다는 점에서 자유학기제와는 차이가 있다.”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120여명 가운데 80% 이상은 공교육 교사였다. 대덕전자기계고 김은형 교사는 “학생들에게 익스트림 스포츠 등을 접하게 하면서 기계의 메커니즘도 알게 하고 삶을 반추하는 기회까지 주는 삼쇠 학교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며 “교육이란 ‘삶의 양식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남춘천중 장재성 교사는 내후년에 강원 춘천 지역에 개교 예정인 ‘공립형 대안학교’ 준비모임을 이끄는 과정에서 에프테르스콜레 사례를 참고하고 싶어 세미나에 참석했다. 장 교사는 “각 에프테르스콜레마다 특화 분야가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 교원들이 국어·수학처럼 기초학문 분야에서 전공이 하나 있고, 여기에 더해 실용학문 분야(요리 등)에서 또 하나의 전공이 있다는 점도 독특했다”고 했다.

에프테르스콜레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립이면서도 ‘공공성’을 띤다는 점이다. 학비는 덴마크 중산층 가정이라면 부담을 느끼지 않는 수준인데 정부가 학비 일부를 지원해준다.

에프테르스콜레는 우리나라 공교육과 대안교육 쪽에 시사점을 주는 학교이기도 하다. 송순재 이사장은 “에프테르스콜레에서 단초를 얻어 우리나라 공교육 쪽에서 대안학교 위탁교육 방식을 확대하거나, 공립학교 체제 안에서 한국형 에프테르스콜레 설립 등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럴 경우 여러 난점을 갖고 있는 자유학기제 등 진로교육 문제도 숨통이 트일 것이고,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의 재학 기간을 기본 단위로 하는 대안교육 쪽도 보다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세미나와 관련된 자료집 등은 삶을위한교사대학 카페(cafe.daum.net/rootNwing)에서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다. 11월 안에 세미나 동영상 자료도 올라올 예정이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