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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2030 좌담 '88만원 세대' 좌절 … 일자리 만들 '능력' 택했다

2030 좌담 '88만원 세대' 좌절 … 일자리 만들 '능력' 택했다

중앙일보|기사입력 2007-12-20 05:17 |최종수정2007-12-20 07:15 기사원문보기


[중앙일보 이철재.민동기.김성룡]

2030세대는 2002년 16대 대선에서 촛불시위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를 앞세우며 진보 성향의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했다. 그러나 올 대선에선 보수 성향의 이명박 후보를 대거 지지했다. 보수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고려대 임혁백(정치학과) 교수는 "경제적 어려움과 아마추어 좌파 정권에 대한 실망과 반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2030세대는 1968~87년에 태어났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의 열매를 일부 누렸지만 사회 진출 시점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청년(15~29세) 실업률은 11월 말 현재 7.2%다. 스스로를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라고 자조한다. 대학 졸업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55%다. 이들의 평균 임금은 88만원. 그래서 '88만원 세대'라는 말도 있다. 올 연말 선거를 마친 10개 서울 주요 대학 중 운동권이 당선된 곳은 한양대.이화여대 둘뿐이다. 젊은이들의 보수화 성향을 보여 주는 단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왜 보수 후보를 선택했나.

유한울=정치적 신념보다 정권 교체 때문에 이명박 후보를 뽑았다. 노무현 정권은 어린 내가 봐도 무능했다. 대통령의 언행은 가벼웠고, 그의 편가르기도 싫었다. 그래서 현 집권 세력은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전수정=2002년 대선에선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다. 사실 1997년에도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다. 10년 만에 보수 성향의 이명박 후보로 갈아탄 셈이다. 노무현 정권의 국정 운영을 보니 '이건 아니구나' '이걸로는 안 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철우=처음으로 선거에 참여했다. 대학생이다 보니 일자리 문제에 관심이 많다. 후보자 개개인을 보고 경제 문제를 해결할 후보를 찾았다. 후보자의 진보.보수를 떠나서 찾아낸 것이 이명박 후보다.

김형근=내가 진보인지 보수인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보수나 진보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다. 이념을 떠나 어느 후보가 나에게 더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해 투표했다. 그래서 보수 후보를 찍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2030세대의 보수화 경향이 뚜렷한 이유는.

김형근=그동안 보수는 친미.반북.독재의 이미지가, 진보는 개혁.민주.반미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현재 이런 이미지만으로 진보와 보수를 나눌 수 없다. 사회적 통념에 따라 진보.보수 개념은 언제든 바뀐다. 나를 비롯한 2030세대는 독재를 피부로 느낀 적도 없다. 민주화의 혜택을 본 것이다. 그래서 이념보다 실용을 찾았다.

유한울=진보라고 하면 독재 정권에 대항한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진보는 도덕적 우월성을 갖췄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정권에서 '진보=도덕적'이라는 생각이 사라졌다. 386 정치인의 비도덕성을 봤기 때문이다. 또 대학사회에선 진보라는 학생 운동권이 다른 의견을 잘 안 듣거나 너무 투쟁적으로 나가는 모습이 환영 받지 못하고 있다. 진보 진영에 대해 자연스러운 반감이 생긴 것 같다.

전수정=요즘 2030세대가 보수를 택한 것은 '안정'이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정작 개혁을 말한 현 정권이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최근 공무원 정년 연장만 봐도 그렇다. 처음 국민과 약속했던 것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정반대로 가는 정권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본다.

김철우=주변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면 고리타분하다고 평가받는다. 2030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태어났기 때문에 개혁보다 안정적 변화를 추구한다. 이념보다는 현실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보수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극우.독재의 전력 때문에 보수를 꺼리는 사람도 많다.

김형근=양분법으로 진보.보수를 나누는 것은 이제 시대상황에 맞지 않다. 보수 안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보수는 나이 들고 가진 사람들만의 이념이라는 전제에 반대한다. 최근 젊은 세대의 보수 성향은 '수구꼴통'과 거리가 멀다. 무조건 과거로의 회귀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물론 보수의 과거는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의 문제는 보수나 진보도 잘못이 있다면 반성해야 한다.

김철우=보수가 좀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하려면 사회적 소수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의 보수는 일부 계층과 집단의 이념으로 보이는 면도 있다.

전수정=보수와 진보를 명확히 가를 수 있을까. 더 이상 우리 세대에겐 이념에 따른 구분은 이슈가 아니다. 그냥 후보 한 사람 한 사람을 보고 선택한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발이다. 다만 보수는 정치적 야욕이 있는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한울=보수든 진보든 극단적 모습은 있다. 그런 극단적 모습이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일부 극우 단체의 문제만 갖고 보수 진영 전체를 다 수구꼴통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보수 후보들이 시장에서 상인들의 손을 아무리 많이 잡아도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쇼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보수 쪽에 조언을 한다면 보수층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배분하는 문제, 계층 분배든 지역 분배든 더 신경 써야 한다.

◆2002년 대선과 달리 북한과 반미 이슈가 부각되지 않았다.

전수정=보수에서 적절히 대안을 내놓았다. 예전에 보수는 친미.반북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부 보수 후보는 '햇볕정책은 계승하되 마냥 당근만 주는 것은 아니다'는 내용으로 정책을 발표했다. 올 10월 2차 남북 정상회담도 효과가 없었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진실성이 보였다. 이번엔 그런 느낌이 거의 없다.

유한울=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역효과가 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단순히 쇼를 위해 북한에 갔다는 느낌이 많았다. 휴전선을 넘어가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는 행사가 특히 더 그랬다. 정치적 이벤트라는 생각이 드니까 거기서 오히려 반감이 들었다. 또 대선이 가까울 때 방북을 하니 더 그랬던 것 같다.

김형근=통일과 대외 정책은 우리의 실생활과 관련이 없다. 미국이 이번에 무슨 이슈를 제공한 것도 아니잖은가.

김철우=국내 문제보다 대외 문제에 관심이 덜한 것은 기본적으로 '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네거티브 유세 탓인지 대선 후보들의 대외 정책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온라인 친여 매체를 통한 여론 형성 기능이 약했다.

전수정=대선 막판까지 도덕성 공방이 계속되다 보니 대선 핵심 내용이 파악 안 되고 인터넷에서 치열함이 없었다. 이번 선거는 네거티브가 강한데 사람들이 거기에 많이 질린 거 같다. 2002년 대선은 우리 세대에겐 재미가 있었다. 촛불시위와 노사모 등 하나하나 쟁취해 나가는 맛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기제가 없어서 폭발력이 약했다.

김철우=정치적 무관심 때문이다. 이슈가 터져 나와도 적극 가담하고 싶지 않았다. BBK 사건이 이슈가 됐지만 관심이 2002년 병역 문제보다 그리 와 닿지 않았다. 나와는 다른 문제려니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김형근='노무현 학습효과'다. 인터넷으로 여론몰이를 해봤는데 결국에는 그게 몰이에 불과했고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정말 대통령을 할 사람은 내가 판단해 찍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국민이 알게 된 거 같다.

유한울=이번 대선과 관련한 인터넷 댓글은 대부분 감정적이어서 볼 게 없었다. 대선 정국이 너무 네거티브 경쟁으로 가서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참가할 매력이 적었다.

◆BBK 이슈의 영향력은 어땠나.

김철우=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물론 도덕성은 대통령의 중요한 자질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능력 면에서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도덕성보다 능력을 더 중시하게 된 것이다.

전수정=BBK는 '정말?'하고 시작했지만 나중엔 허무주의로 끝났다. 너무 오래 끌어 질린 것이다. 특검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대세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

유한울=최근 이명박 후보의 '광운대 동영상'을 보면서 지지를 철회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검찰 수사도 100%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명박 대세론을 뒤엎기엔 부족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대부분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실망이 커서 그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정리=이철재.민동기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