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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버젓이 선행학습 광고… 반쪽짜리 法 한계 드러나

버젓이 선행학습 광고… 반쪽짜리 法 한계 드러나


선행학습금지법 시행 첫날인 12일 학생들이 서울 대치동 학원가를 걸어가고 있다. 이날부터 학원은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행위를 못하게 됐지만 곳곳에서 버젓이 선행학습 강좌를 광고하고 있었다. 서영희 기자

청소년의 창의력과 학습의욕을 꺾고 학부모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선행학습 풍토에 제동을 걸기 위해 공교육정상화법(선행학습금지법)이 시행됐다. 그러나 공교육 규제만 가능하고 정작 학원 등 사교육 업체에는 적절한 제재 수단이 담기지 않아 ‘반쪽짜리’란 우려가 적지 않았다. 법 시행 첫날인 12일 서울 유명 학원가를 돌아봤다. 학원들은 버젓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에게 고교 과정을 가르친다며 선행학습을 부추기고 있었다.

서울 대치동의 수학 전문 A학원 입구에는 선행학습을 광고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포스터에는 ‘중등 3년 과정 20주 완성’ ‘고등 과정별 10∼12주 완성’이라고 적혀 있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평일 오후 7시40분∼10시에 진행하는 수학 강좌는 ‘고등수학 Ⅰ·Ⅱ 다지기’ ‘미적분Ⅰ·Ⅱ 다지기’라고 안내하고 있다.

인근의 수학·과학 전문 B학원도 마찬가지였다. 선행학습을 안내하는 팸플릿이 입구에 비치돼 있었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고교 과정인 미적분Ⅰ·Ⅱ를 가르치며 기하·벡터, 확률과 통계를 거쳐 집중 문제풀이로 넘어간다고 소개한다. 초등학교 5·6학년에게는 중학교 물리·화학을 가르치는 과정이 있었다. 팸플릿에는 ‘초등학생 대상으로 중학교 과학을 선행하면서 사고력 수업을 병행해 영재원을 대비한다’고 돼 있다. 이 학원 화학 강사는 “(법 시행은) 들어서 알지만 내용은 모른다”며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12일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 입구에 비치된 선행학습 안내 팸플릿. 예비 고1(중3) 학생을 대상으로 고교 수학 ‘미적분Ⅰ·Ⅱ’ 및 ‘기하와 벡터’를 가르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양민철 기자

홈페이지 광고도 여전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C학원 홈페이지는 ‘초등 3학년 정규과정부터 고1 선행, 심화 과정을 완성한다’고 광고하고 있다. 의대반의 경우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고교 전 과정을 ‘완성’시켜 준다고 한다. 서울 강서구의 D학원은 홈페이지에서 선행학습 관련 문구를 삭제했다. 그러나 이 학원 원장은 “선행학습은 학부모 입소문으로 퍼지며 어차피 1대 1 상담으로 안내되는 터라 광고 규제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법의 맹점 때문에 벌어진다. 선행학습 금지법은 학교에는 강제력을 갖는다. 수업이나 방과 후 학교에서 교육과정에 앞서 가르치는 행위를 금지했다. 각종 지필평가와 수행평가, 교내 대회에서 배우지 않은 내용은 출제하지 못한다. 대학은 논술 등에서 고교 수준을 넘는 내용을 출제하면 입학 정원이 깎이는 제재(10% 수준)를 받는다.

그러나 사교육 업체는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광고나 선전을 하지 못하도록 했을 뿐이다. 이마저도 위반 시 제재 조항이 없다. 교육부는 지역 교육청과 유명 학원가를 대상으로 합동 점검에 나설 계획이지만 적발하더라도 금지할 수단이 없다. 서울 강서구에서 중학생 자녀를 키우는 정미선(45·여)씨는 “너도나도 하는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불안감이 크다”며 “수능과 내신을 대비하려면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법 때문에 (선행학습) 안 시킬 부모가 어디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도경 김유나 양민철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