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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체험학습

우리가 만든 올레길, 삭막한 도시에 숨통 됐으면

“우리가 만든 올레길, 삭막한 도시에 숨통 됐으면”

등록 : 2014.01.06 19:56수정 : 2014.01.06 20:40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인천 초은고 도서반 정윤정, 박소연(1학년), 김하연, 박연주, 최예지, 김예진, 서윤정, 문수경, 박소연(2학년), 김한경양이 도서관에 모여 ‘청라 올레길 프로젝트’ 때 만든 관련 자료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함께하는 교육] 교육 정보

인천 초은고 ‘청라 프로젝트’

공항철도 검암역에 내리면 택시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인천의 신도시 청라. 이곳에 단지가 조성되고 사람들이 입주한 지 3년째다. 2년 전까지는 아파트 한 동에 한 집 정도 불이 켜져 있을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1년 사이 사람들이 입주하긴 했지만 아직도 “청라에서 누구라도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단지들은 성곽을 이룬 채 바깥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이 사람 냄새 나는 소통의 공간이 될 순 없을까?” 지난해 5월, 인천 초은고 도서반 학생들은 이런 질문을 바탕으로 ‘청라를 걷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다’란 제목의 ‘청라 올레길 프로젝트’(이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청라 지역을 걷고 이야기가 있는 올레길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홍보하는 식의 프로젝트다.

“여기 학생들은 가깝게는 인천, 부천, 멀게는 부산, 포항, 광주 등 다양한 곳에서 왔어요. 신도시라 삭막하기도 하고, 아직은 지역에 대한 애정이나 주인의식이 부족하죠.”

지난 12월30일 초은고 도서관에서 만난 2학년 최예지양의 설명이다. 프로젝트는 5월에 처음 구상을 시작해 12월에 보고서를 마무리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도서반 외에 희망자 20명을 선발해 약 40명이 참여했다. 4인으로 이뤄진 모둠 10개가 프로젝트에 대한 기초 계획을 세우는 게 첫 단추였다. 그 과정에서 ‘내 인생의 멘토를 만나다’라는 도서관 행사를 통해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을 만나며 생각을 구체화하기도 했다.

올레길을 찾아나서는 여정은 교과서로 배워왔던 것들을 몸으로 체험해보는 시간이었다. 세 번의 발표회를 거치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말하고, 친구들의 조언을 듣는 시간이 마련됐다. 문제점에 대해 직언을 던지는 친구들도 있었다. 2학년 정윤정양은 “토의를 참 많이 했다.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내 아이디어를 버려야 할 때가 있더라”며 “다른 사람과 더 나은 결과를 끌어내도록 대화하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9월, 2차 발표회를 하기 전 여름방학에는 직접 청라 지역에 다니며 주변 여건을 조사하고, 올레길 코스를 짜봤다.

도서반 학생들 중심으로 시작
토론·발표 거쳐 3개 보고서 완성
걷기코스 주제는 치유·소통·정화
“구청에 당당히 제안 뿌듯해요”

1학년 박연주양은 “여름이라 해를 피하려고 새벽 여섯 시부터 걷기 시작했었다. 아침 해가 뜨는 모습을 봤던 것도 추억으로 남는다”고 했다. 이 프로젝트는 수행평가 등에 포함되지 않는 활동이었지만 학생들은 진정성 있게 움직였다. 무엇보다도 훗날 ‘제2의 고향’으로 남게 될 청라에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오갔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2학년 서윤정양은 “학업 때문에 바빠서 서로 시간 맞추는 일이 가장 어려웠었다. 야자시간이나 점심시간 등에 모여서 회의를 했었다”고 했다.

2차 발표회 등을 거치며 10개 모둠은 3개의 연합 모둠으로 추려졌고, 지난해 11월15일, 3차 발표회를 거쳐 각 모둠별로 3개의 보고서가 완성됐다. ‘치유’를 주제로 잡은 모둠은 청라 주민들이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힐링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물, 여가, 허브’라는 주제로 꽃내음길(3.5km), 흰여울길(4,7km), 빛누림길(2.8km) 등 세 개 코스를 만들었다. 2학년 박소연양은 “길 중간 중간 야외도서관을 만들어서 힐링과 관련한 책과 의자 등을 설치하고, 길 100m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치유문구’를 새겨보자는 아이디어도 냈다”고 설명했다.

‘소통’, ‘휴식’ 등을 주제로 잡은 다른 모둠은 각각 아침(운동), 점심(휴식), 저녁(소통) 시간대로 나눠 걷기 좋은 올레길 10개 코스(코스마다 약 3km 안팎)를 개발했다. 1학년 박소연양은 “서로 모르고 지내던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된 곳이라 소통이 없다는 문제점을 발견하고, 단지를 연결해주는 코스를 고민해봤다”고 설명했다. 과학동아리 학생들과 연합해 청라의 커널웨이(Canal Way) 수질 상황을 알아보는 관련 어플도 개발했다. ‘정화’를 주제로 잡은 모둠은 청라 곳곳 물길에 오염된 수질이 있다는 걸 알고, 길을 개발할 때 나사에서 선정한 공기정화식물, 수질정화식물 가운데 일 년 이상 살 수 있는 식물을 심자는 아이디어 등을 냈다.

2학년 김하연양은 “선생님(도서관 담당 이성희 교사)은 큰 틀에서 조언을 해 주셨고, 구체적인 건 우리 스스로 의견을 내고 진행했다”고 했다. “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아이디어를 풀어놓고, 토의하며 시행착오도 겪는 과정 자체가 배움이었어요.”

학생들은 약 8개월에 걸쳐 완성한 세 개의 보고서를 정리해 인천서구청과 청라지역 커뮤니티 등에 제안할 예정이다. 올해는 지난해 프로젝트에 이어 ‘청라를 디자인하다’라는 주제로 개발한 올레 코스를 바탕으로 벽화 그리기, 벼룩시장 열기, 이동식 책방 만들기 등도 할 예정이다. 2학년 김한경양은 “고교생이 구청에 가서 ‘저희 생각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것 자체로 뿌듯하다”며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소속감도 자연스럽게 생겼다”고 했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