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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노숙인 판매 잡지 표지 만든 '광고천재'

노숙인 판매 잡지 표지 만든 '광고천재'

 
'빅이슈 코리아' 표지 편집장 이제석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빅이슈가 태어났다 나도 다시 태어났다' `엄마, 나 취직했다!'

지난달 창간한 월간지 `빅이슈' 한국판의 창간호와 2호의 표지 카피다. 표지에 나오는 사람은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산발해 노숙자처럼 꾸민 일반인 모델이다.

천진하고 환한 미소를 짓는 이 모델은 창간호에서는 젖꼭지를 물고 턱받이를 했으며, 2호에서는 양복을 차려입었다.

`청년들이 만들고 노숙인이 판매해 청년 실업을 덜고 노숙인 자활을 지원하는 잡지'라는 이 잡지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표지를 만든 이는 세계 광고 공모전을 휩쓸어 `광고 천재'라 불리는 이제석(28)씨다.

그는 총을 겨눈 병사가 그려진 포스터를 기둥에 감아 총구가 그 병사에게 되돌아오도록 한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반전(反戰) 광고로 지난해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뉴욕페스티벌 그랑프리'를 비롯해 10여개의 상을 휩쓴 주인공이다.

대학원 공부를 위해 미국 출국을 앞둔 그를 만났다.

미국의 유명 광고회사 여러 곳에서 일하다 지금은 `이제석 광고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빅이슈의 표지 편집장 제안을 그 자리에서 선뜻 수락했다고 했다.

표지 편집 전권을 받는 대신 `무료로, 빅이슈가 원한다면 끝까지'라는 조건이었다.

그는 15일 "처음에는 내 광고를 실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나는 표지가 탐이 났다"며 "잡지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얼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빅이슈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면서도 다듬어지지 않은 강렬한 느낌으로 전달하고 싶었다"며 "앞으로는 표지 자체가 빅이슈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전 포스터뿐만 아니라 독도, 환경, 재난, 장애, 지역, 빈곤 등 다양한 주제로 공익광고를 만들어 온 그는 `공익 광고라도 고리타분하면 외면받는다'는 철칙대로 단순하지만 기발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는 "상업 광고도 많이 했지만 남는 게 없으니 시시하더라"며 "내가 만드는 광고는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세상을 변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계명대 시각디자인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국내 어느 공모전이나 광고회사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그는 미국 `뉴욕스쿨오브비쥬얼아트'에서 광고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유수의 광고 공모전을 휩쓸었다.

이씨는 "출품하기 전에 열 명에게 보여줘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최고'라고 말하지 않으면 내지 않았다. 그랬으니 승률이 좋았다"며 "그런데 반전 포스터는 한 사람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것만큼은 스스로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그의 목표는 유엔과 함께 일하는 것. 이씨는 "세계를 무대로 아이디어를 풀어놓고 사람과 세상이 변하는 것을 보고야 말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eoyyie@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