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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순간의 선택이 교육을 좌우한다

순간의 선택이 교육을 좌우한다



[한겨레21] [연속기획- 바꿔! 지방자치 ⑦]

‘다양성이냐 경쟁이냐’ 교육감 성향에 따라 춤추는 지방교육…

6·2 선거에서 ‘공정택’과 ‘김상곤’을 모델로 한 전선 형성될 듯


“이번 시·도 교육감 선거는 ‘김상곤’을 뽑느냐, ‘공정택’을 뽑느냐다. 주민들의 선택에 따라 해당 지역 학교교육의 방향은 다양성과 경쟁으로 갈리게 된다.”(송경원 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

오는 6월2일, 선거권을 가진 국민이 선택해야 하는 건 광역시장·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 지방의원만이 아니다. 자기가 사는 시·도의 교육감과 교육의원도 뽑아야 한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했지만, 교육 분야의 행정·입법 기구인 교육감·교육의원까지 모두 직선으로 뽑는 건 이번 선거가 처음이다. 지금까진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한 간선제 형식이었는데, 2006년 개정된 지방교육자치법에 따라 올해부터 직선제로 바뀐 것이다.

다만 올해 지방선거일 1년 전에 임기가 끝난 서울·경기·제주 등 10여 곳에서 잔여 임기를 채울 교육감을 미리 직선제로 뽑은 바 있다. 하지만 관심도는 대체로 낮았다.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등이 그때 당선된 이들이다.

1996년 서울에서 등급 성적표 폐지, 전국으로 확산

주민의 손으로 지역 문제를 해결한다는 ‘자치’의 논리로 보자면, 교육감·교육의원 직선제는 당연하다. 교육행정을 수요자인 지역 주민의 필요와 요구에 맞게 운영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주민들이 나누는 것이 지방교육자치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헌법 31조 4항이 보장하는 교육의 △자주성(국가권력·일반행정기관으로부터 독립성 유지) △전문성(교육 대상자의 특성에 맞게 교육할 수 있어야 함) △정치적 중립성(교육은 정치적 변동에 영향을 받아선 안 됨) 원칙에 비춰보면, 6월2일 선거에서 주민직선제는 좀더 특별한 의미를 띤다.

이를 짚어보려면 우선 1996~2009년 서울의 교육행정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6년 간선으로 뽑힌 유인종 교육감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초등학교에서 수·우·미·양·가 형식의 성적표와 일제고사를 없앤 것이다. 교육평가 분야 전공자인 그는 등급을 매기는 성적표 대신 학생 개개인의 특징과 장점을 적는 서술형 성적표를 도입했다. 일제고사 대신 특기·적성 교육과 체험학습을 강화했다. 0교시, 야간 강제자율학습 등도 폐지했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내세운 그의 시도에 여론은 대체로 우호적이어서, 이런 변화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보수우파들은 학력 저하가 우려된다며 그를 비판했지만, 당시 초등학교에 다닌 학생들이 국제학력평가에서 거둔 결과는 우려와 달랐다.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가 2007년 실시한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연구(TIMSS·Trends in International Mathematics and Science Study)에서 평가 대상인 중2 학생들은 50개국 학생 가운데 수학 2위, 과학 4위를 기록했다. 이들은 1999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세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3년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도 평가 대상인 고1 학생들은 문제해결력 1위, 읽기 2위, 수학 3위, 과학 4위로 전체 40개국 가운데 종합순위 2위였다. 이들 역시 유인종 교육감 재임 때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일제고사도, 등급이 적힌 성적표도 경험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유 교육감은 자립형 사립고(자사고) 설립을 추진한 교육부나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도 날카롭게 대립했다. 학교 설치·이전·폐지 등을 결정할 권한은 교육감한테 있기 때문에 중앙·지방 정부가 아무리 학교를 짓고 싶어도 교육감이 반대하면 뜻을 이루기 어렵다. 유 교육감은 특히 2003년 서울 길음뉴타운에 자사고를 세우겠다는 이명박 당시 시장에게 “중·고교 터가 하나뿐인 길음뉴타운에 일반고 대신 특목고나 자사고를 세울 순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교육청 예산의 절반을 지원하는 서울시는 학교 설립 권한을 교육청에서 지방정부로 가져오는 방안을 검토해 교육계의 반발을 샀다. 어쨌거나 유 교육감은 행정부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고 교육자치를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육 대통령’의 추악한 말로

이 모든 것은 2004년 8월 공정택 교육감이 선출되면서 뒤바뀐다. ‘학력 신장’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공 교육감은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와 수·우·미·양·가 형식의 성적표를 부활시켰고, 중1 학생들을 대상대로 일제고사도 실시했다. 수준별 이동수업, 즉 ‘우열반’을 초등학교로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국제고·특목고·영재고는 물론 엄청난 논란을 빚은 국제중까지 ‘상위 1%’를 위한 학교를 기어이 늘렸다.


교육정책의 방향을 뒤바꿔 공교육의 신뢰를 흔들었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중앙권력의 입맛에 따라 정책을 만들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영어 몰입교육 방침을 내놓자마자 공 교육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올해부터 초등학교 11개, 중학교 11개 등 22개교에 우선 적용하고 이후 점차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후 거센 비판을 감당하지 못한 인수위가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개인적 실수’로 치부하며 영어 몰입교육 계획을 백지화하자, 공 교육감은 “예정돼 있지 않았던 일”이라며 바로 태도를 바꿨다.

2008년 11월 ‘금성 교과서 파문’은 공 교육감이 교육의 자주성을 스스로 해친 사례다. 우파들의 ‘좌편향 교과서’ 시비로 교육과학기술부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권고안’을 발표하고, 이를 일선 학교 교장과 학교 운영위원들에게 알리라는 방침을 시·도 교육청에 전달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그에 따라 ‘교과서 연수’를 실시했는데, 교재는 교과부의 수정 권고안, 강사는 교과부 관계자였다. 교과부·교육청이 학교의 교과서 채택 과정에 압력을 행사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대통령령인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라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는 운영위원들이 3배수로 추천하고, 그 가운데 1종을 교장이 최종 선정하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산·인사권을 쥔 시교육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학교들은 근현대사 교과서를 다른 출판사 것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37곳이 교체에 나서 금성 교과서 채택률은 파문 이전 51%에서 그해 말 36%로 떨어졌다.

공 교육감은 인사권을 교육자치가 아니라 개인 축재의 수단으로 휘둘렀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지난해 3~8월 교육청 간부 2명한테서 인사청탁과 함께 5900만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수수)로 3월26일 검찰에 구속된 것이다. 그는 2006년 8월과 2008년 3월 승진 대상이 아닌 사람을 장학관과 교장 등으로 승진시키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도 받고 있다. 이미 2008년 8월 교육감 선거에서 차명예금 4억여원을 재산신고에서 누락시킨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아 지난해 10월 교육감직에서 물러난 그였다.

50년 동안 교육계에 몸담은 이, 혹은 ‘교육 대통령’의 위세를 떨치던 이의 추악한 말로는 간선제 시절의 ‘관행’을 떨치지 못한 탓이 크다. 교육감 후보들은 선거에서 ‘표’를 던지는 학교운영위원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는 게 가장 중요한데, 이 학교운영위원회 구성을 좌우하는 힘은 교장에게 있었다. ‘교장직에 내 사람 심기’는 당연하게 여겨졌고, 이런 과정에서 금품살포와 인사청탁이 만연했던 것이다. 거기에 교육의 미래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요약하자면, 교육감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해당 지역의 교육정책이 춤을 출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흥주 한국교육개발원 기획처장은 ‘교육자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구상’이란 논문에서 “교육자치제는 중앙의 교육부만 장악하면 지방의 교육행정 권한도 장악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성립하기 어렵게 만들어 교육정책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며, 교육개혁을 정치적 변동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교육 자체의 논리에 따라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실행에 옮김으로써 교육행정 분야에서 안정을 기할 수 있게”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진보·보수 진영 후보 단일화 움직임

핀란드의 교육자치 모델은 일선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교육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핀란드는 중앙정부가 교육의 세세한 부분까지 관리·통제해왔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지방분권과 학교자율에 초점을 맞춰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엔 교육 목표와 원칙, 교과목별 교육 방향 등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재정을 조달하는 기능만 남았다. 교육과정 설계, 교재 선택, 수업 방법 결정 등의 권한은 일선 학교와 교사에게 넘겨줬다. 가령 이민자가 많은 학교에선 핀란드어 수업을 집중적으로 하고, 영어 읽기에서 ‘l’과 ‘r’의 발음을 구별하지 못하는 학생에겐 전문 특수교사가 붙어 특별지도를 하는 식이다. 지방정부는 이들을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기능을 한다. 또한 교육청의 장학감사제도를 폐지해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그 대신 다양한 설문조사를 통해 교육 목표가 효과적으로 달성되고 있는지만 따졌다. 이처럼 신뢰에 기반한 학교자치 보장은 핀란드를 세계 최고의 교육 강국으로 만들었다.

‘핀란드 수준’은 아니라도, 일선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하려는 움직임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눈에 띄는 건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대표공약이던 ‘혁신학교’다. 혁신학교란 교육과정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학생의 수업 집중도와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학급당 25명 이하, 한 학년 6학급 이내의 소규모로 운영되는 학교를 말한다. 규모가 작으면 그만큼 학생 개개인에 맞춘 교육이 가능하고, 토론수업이나 현장학습 등 수업 형식과 내용이 다양해진다. 현재 경기도엔 초·중·고교 33곳이 혁신학교로 지정돼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김 교육감은 이 밖에도 학교에 일제고사 응시 결정권 부여, 전교조 시국선언 교사 징계 거부 등을 통해 중앙통제식의 획일적 교육에 반기를 들고 있다.

6월 선거가 ‘공정택이냐, 김상곤이냐’로 치러질 것이라는 전망은 지역과 학교에서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을 할 것이냐, 아니면 서울 상위권 대학에 많이 보내기 위해 무한경쟁을 감수할 것이냐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이미 유권자들은 ‘전교조 교육감은 안 된다’ ‘서울대 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강남 주부층’의 결집으로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당선되는 과정도 봤고, 진보개혁 진영의 합심으로 당선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무상급식을 전국적 이슈로 만들어가는 상황을 지켜본 터다.

이번엔 전국에서 이런 전선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 교육감과 비슷한 교육 철학을 가진 진보개혁 진영에서 최소한 12개 시·도 교육감 선거에 단일 후보를 내기로 했고, 보수 진영도 이에 맞서 후보 단일화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진보개혁 진영에서는 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최홍이·이부영 교육의원, 이삼렬 숭실대 교수 가운데 한 사람이 4월14일 단일후보로 결정된다. 보수 쪽에서는 김형숙 덕성여중 교장, 이원희 교총 회장 가운데 한 사람으로 단일화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는 김상곤 교육감과 정진곤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2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대 고교등급제 적용과 관련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박종훈 경남 교육의원은 보수 쪽 후보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유일한 진보개혁 후보인데, 4월21일 나올 소송 결과에 따라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교육시민단체는 후보 정책 검증 별러

학부모·시민단체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좋은교사운동, 경실련,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등이 모인 ‘2010 서울교육감 시민선택’은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검증해 유권자의 선택을 돕겠다고 밝혔다. 아직은 서울뿐이지만, 이런 정책 검증 움직임은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풀뿌리 교육감’ ‘풀뿌리 교육의원’이 태어날 날은 5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